가을이란 놈이 무엇이라고 휴일 날 집에 편안히 쉬지도 못하게 만든다. 모처럼 말끔하게 청소한 카메라를 메고 멀지않은 삼청동으로 길을 잡았다.
오래전에 가끔씩 들리던 수제비 집에서 간단히 점심도 먹고 싯 누렇게 빛이 바래가고 있을 은행나무 길를 한적하게 걷고 싶어 빨리 간다는 욕심에 택시를 잡아탔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어디서 공사중인지 삼청동 초입길 부터 차가 빠지지 않는다.
택시기사도 미안했던지 도중에 내려서 걸어가라고 배려를 해주어 차에서 내리고 보니 인도도 차도 만큼 많은 사람들로 넘쳐 난다.
더욱이 나를 당혹스럽게 했던 것은 수년전에 와 보았던 삼청동 길과는 판이하게 바뀐 거리의 풍경이었다. 여기저기 유럽풍의 까페며, 악세사리 판매점 등이 옛날 고즈넉하고 한적했던 거리를 대체하고 있었고, 그 거리의 주인들도 회사원이나 초로의 노인들에서 젊은 청춘남녀들과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나들이 객들로 바뀌어져 있었다.
간간히 옛 한옥을 리모델링한 까페며, 음식점들이 보여 옛 기억의 일단을 들추어 내게도 한다. 마침내 삼청동 바지락 수제비 집에 당도했지만 오래전 손맛이 지금까지 여전한지 손님들이 문밖으로 길게 늘어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에서 점심 먹을 생각은 일찌감치 접고 감사원 쪽으로 천천히 걸어 올라가니 지나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느긋하게 가로변 은행나무를 벗 삼아 깊어가는 가을을 눈으로 가슴으로 넉넉히 느낄 수 있었다.
길을 오르다가 수수한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30연 전통의 도가니 탕집을 만나 그 안을 기웃거려도 보고, 황토로 만들어진 식당 대문에 예쁘게 걸려진 메뉴판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감사원 앞에 앉아 다리쉼을 하면서 어디로 갈까 잠시 고민하다가 북촌 한옥마을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내려가는 길목 높다란 담벼락엔 담쟁이 넝쿨이 여기 저도 있어요 하고 제 낯을 붉히며 지나는 나의 눈길을 잡아끈다.
저만치 한옥 앞에서 한무리 사람들이 한손에 지도를 들고 웅성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얼마전 모 방송국 예능 프로그램에 이곳이 소개되고 나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모양이다.
그들의 뒤를 따라 어느 골목안으로 들어가 보니 영락없이 어릴적 골목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다. 전보산대, 쓰레기통, 나무대문, 처마 밑 외등 그리고 윗길 아랫 길을 연결 짓던 열 댓개 층의 시멘트 계단 등 등 그 속엔 살갑게 아끼며 어울렸던 인정많은 이들이 함께 했었는데 지금도 이곳엔 그런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
늦은 점심을 해결 할 겸 해서 중앙고 쪽 언덕배기를 넘다보니 다세대 주택 담 위엔 여인상 하나 머리를 묻고 웅크린 린 채 자리하고, 그 앞 정자엔 동리 노인 한분이 사색 하듯 앉아 있어 묘한 그림을 연출한다.
시장기를 부채질하 듯 어디선가 부침개 지지는 고소한 기름 냄새가 나서 따라가 보니 허름한 분식점에 이른다. 동네에 대한 입소문 탓에 나들이 온 손님들로 분식점은 제법 북적이고 아내와 나도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냄비 라면과 떢볶이를 시키지만 일이 손에 익지 않았는지 하 세월이 지나도록 음식이 나올 줄을 모른다.
다른 때 같았으면 채근도 하고 짜증도 냈겠지만, 온 가족이 동원되어 밀려드는 손님을 맞으며 서로 손발이 맞지 않아 우왕좌왕하는 설 익은 장사꾼 모습에 서두르지 말라며 넉넉한 웃음마저 흘린다. 맛은 서투르지만 가격은 너무나도 정직한(라면 한그릇에 2,000원) 그들이 있어 기분좋게 값을 치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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