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희처럼 춤추는 수풀
어른을 위한 '판타지 세계'
5년 전 파리 남쪽 포르트 도를레앙 부근의 국제학생기숙사에 머문 적이 있다. 프로방스관에 연구원 자격으로 입주해 학위 논문을 마무리할 때였는데 그 시절 주말마다 길 맞은편의 몽수리공원으로 산책을 나섰다.
이곳에 자주 간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곳에 가면 왠지 모르게 한국의 야산에 들어섰을 때처럼 아늑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기숙사와 도서관만 오가는 쳇바퀴 일상 속에서 1주일에 한번 맞는 이곳에서의 휴식은 또 다른 1주일을 버텨나가는 에너지의 원천이 됐다. 또 한 가지는 공원을 산책할 때마다 한 세기 전 이곳을 드나들며 울창한 수풀을 즐겨 그렸던 화가 앙리 루소(1844~1910)의 천진한 마음과 만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몽수리공원은 프랑스에서는 보기 드문 영국식 정원이다. 파리의 정원들이 날카로운 기하학적 조형성을 추구하는 형식주의 정원인 데 비해 이 정원은 자연스러운 맛을 추구하는 이른바 '풍경식 정원'이다. 공원 안에는 마로니에,너도밤나무,플라타너스 등 1400여그루의 아름드리 나무가 방문자들을 거대한 그늘로 감싸 안는다. 특히 이곳은 다람쥐 같은 설치류의 천국이자 철새들에게 은밀한 보금자리를 제공해주는,파리에서도 가장 아늑한 곳으로 손꼽힌다.
이 공원은 오스망 남작이 대대적으로 전개한 파리 재개발 사업 때 파리 외곽을 감싸는 네 개의 녹색 벨트 중 하나로 조성된 것이다. 당시 영국식 자연주의 정원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은 프랑스대혁명 이후 절대왕정의 유산인 형식주의 정원이 공화파에 의해 거부되면서 영국식 정원이 그 대안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었다.
'선데이 페인터'(아마추어 화가)였던 루소는 땜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힘겨운 청소년기를 보냈지만 스물일곱 되던 해 파리 세관의 서기로 취직하면서 처음으로 삶의 여유를 갖게 된다. 그는 일요일마다 파리의 식물원,불로뉴숲 혹은 몽수리공원에 터를 잡고는 이국적인 식물과 동물들을 관찰하고 이것들을 스케치북에 옮겼다. 정식 미술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그의 유일한 멘토는 꾸밈없는 자연이었다.
강신술을 신봉하던 그에게 굳이 스승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는 그림은 사람이 그리는 것이 아니라 나무와 숲의 정령이 화가의 몸에 강림해 붓을 휘두르는 것이라고 믿었다. 프랑스 밖은 고사하고 파리 외곽으로 변변히 나들이 한번 해본 적 없는 그는 이런 신비주의적인 믿음 아래 자신이 본 것들과 잡지나 도감에서 본 이국의 이미지들을 결합해 아무도 두드려 본 적 없는 전인미답의 판타지 세계를 창조했다.
처음에는 취미삼아 시작했기 때문에 정작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40대 초반이었다. 아마도 숲의 정령의 계시였던 것일까. 그는 마흔한 살에 처음으로 살롱전의 문을 두드려봤지만 거부당했다. 아마추어 냄새가 풀풀 나는 그의 그림은 조소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는 실망하지 않고 이듬해에는 반살롱전이라고 할 수 있는 앙데팡당전에 출품한다. 다행히 전시장 입구를 지키던 심사위원이 자리를 비워 그는 아무 제지도 받지 않은 채 '요상한' 그림들을 전시장에 걸고 유유히 빠져나왔다.
그의 작품에 대해 비난이 빗발쳤다. 무엇보다도 그의 그림에는 명암법,원근법 같은 회화의 ABC가 전혀 안 갖춰져 있었다. 색채는 온통 원색으로 가득해서 생경한 느낌을 줬고 붓질도 거칠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게다가 대상은 마치 코흘리개 아이가 그린 것처럼 미숙했고 인물들의 포즈는 증명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 앞에 앉은 것처럼 경직돼 있었다.
오히려 이런 미숙함 속에서 시대의 전위들은 새로운 미술의 가능성을 읽었다. 아프리카의 토속적 공예품 속에서 원시적 생명력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고 원시주의 미술을 향해 나아가던 피카소에게 루소의 작품은 숲의 정령이 보낸 대가의 강림이었다. 미래주의자 로베르,모더니즘 문학의 개척자인 기욤 아폴리네르도 이 세리 출신 화가의 원군을 자청했다.
용기를 얻은 루소는 세관원을 사직하고 본격적인 화가의 길로 들어선다. 그러나 환쟁이의 삶이 생각보다 그리 만만하지는 않았던 듯 루소는 생활고에 허덕이게 되고 급기야 연극대본을 쓰고 바이올린 레슨까지 나서게 된다. 작가로서의 입지는 날이 갈수록 탄탄해졌지만 그의 그림을 사주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몽수리공원 산책'은 그가 고단한 삶을 마치고 숲의 정령에 이끌려 천국의 문을 두드리기 직전에 그린 작품이다. 그림을 보면 100년 넘은 고목들이 풍채를 뽐내며 하늘을 찌를 듯 도열해 있고 산책로 좌우에는 사람보다도 훨씬 큰 식물들이 유연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나무나 식물들이 감정을 지닌 존재로 묘사됐다는 점이다. 나무들은 허리를 구부린 채 산책로를 내려다보며 단란한 가족 혹은 연인들을 향해 대화를 건네는 것처럼 보인다. 식물들은 마치 무도회장의 무희들처럼 군무로 방문객들을 환영하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그 사이를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사뭇 경쾌해 보인다. 동화처럼 아름다운 판타지의 세계.그곳에 원근법과 명암법을 들이대면 판타지의 맛은 확 가실 수밖에 없다.
루소의 그림은 어른을 위한 동화의 세계다. 인위의 세계 속에서 판타지를 잃어버린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깨우침과 희망의 메시지다. 그는 자연성이란 인위에 길들여지지 않은 유아적인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생각을 자신의 그림에 아이의 눈과 마음으로 담았던 것이다.
'세관원 루소'는 1910년 괴저병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다. 그는 화구를 챙길 틈도 없이 서둘러 천국의 문을 열었다. 그의 절친한 친구 아폴리네르는 그 안타까운 마음을 묘비명에 담았다.
'멋진 루소,우리 모두 자네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네.듣고 있지?/들로네 부부,무슈 크발시와 나 이렇게 자네 앞에 서 있네./우리들이 마련한 짐을 천국의 문을 통해 면세로 부쳐 주게./자네에게 붓과 캔버스를 보내주려는 걸세./아마도 지금쯤 자넨 빛과 회화의 진실 속에서 성스러운 여가를 보내고 있을 테지./언젠가 별,사자와 집시를 쳐다보고 있는 나의 초상화를 그렸을 때처럼 말일세.'
정석범 미술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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