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gerecter.egloos.com/4474088 -현재 파는곳이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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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서점에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동물 이야기"라는 두 권의 책이 나옵니다. 이 책은 어린이용으로 발매된 것인데, 당시 유행하던 "세상에서 가장..." 이라는 제목을 달고 이런저런 저작권 없이 모아서 울궈먹을 만한 우화들을 모아 놓고, 매끈하고 참신한 표지를 붙여서 팔아먹던 책들의 한 종류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상당히 특이한 내용을 담고 있었고, 결국 이 책이 우리나라에 출판된 은서동물학(隱棲動物學, cryptozoology)을 소재로한 책 중에 가장 널리 알려진 것 중에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무슨 내용인고 하니, 아마이젠하우펜(Ameisenhaufen)라는 사람이 남긴 기괴한 동물들에 대한 기록을 엮어 놓은 책이었던 것입니다.
(책 표지)
일본식으로 말해서 "은서동물학"이라고 불리우는 이 소재는 세상 구석진 곳에 모습을 숨기고 있는 매우 기이한 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것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역시 네스호의 깊은 물속에 있다고 하는 괴물에 관한 것이라든가, 아프리카의 정글 깊숙한 곳 사람이 닿지 못하는 곳에 아직도 공룡이 남아 있다는 따위의 이야기를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거대한 배를 부술 수 있을 만큼 거대한 뱀 모양의 괴물이 넓은 바다를 헤메고 다닌다는 것도 벌써 몇백년째 내려오는 기이한 동물 목격담일 것입니다. 듀나가 쓴 "선중조우"같은 단편소설은 엄청난 줄거리가 없더라도 은서동물학의 신비로운 향취를 그려내는 것만으로 얼마나 재미난 읽을 거리가 되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은서동물학을 다룬다는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동물 이야기"라는 책의 내용은 무엇인고하니, 아마이젠하우펜이라는 사람이 세계 구석구석을 이상한 동물을 찾아 힘들게 탐험하면서 정말로 기이한 희귀 생물을 찾아냈는데, 아마이젠하우펜 박사가 실종되어버려서 기록이 묻혀 있었던 것을, 그것이 발굴되었으므로 책으로 엮어 소개한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이 책에서는 일지 기록을 토대로 아마이젠하우펜 박사와 그의 조수 한스가 함께 다니는 이야기들을 꾸며서 탐험담을 읽어 내려갈 수 있게 하면서, 아마이젠하우펜 박사가 남겼다는 사진 자료와 스케치, 보고 문건 등을 같이 자료로 실어 놓고 있습니다.
(책에 실려 있는 어느 희귀한 동물의 발견 사진 자료)
(아마이젠하우펜이 남긴 물속에 사는 거대한 파충류에 대한 스케치 자료)
아마이젠하우펜은 독일의 루트비히 막시밀리안 대학에서 재직하고 있던 교수입니다만, 30년대에 나치스의 전횡이 너무 심해져서 미국으로 이주하여 살게 된 인물입니다. 아마이젠하우펜은 그렇게 하여 50년에 실종될 때까지 세계의 오지를 탐험하면서 50년대까지만 해도 남아 있던 각종 희귀 생물을 관찰하고 기록을 남긴 것입니다.
이 책에 실린 아마이젠하우펜 박사가 세계의 가장 깊숙한 곳들만을 헤집고 다니면서 찾아냈다는 기이한 동물들은 그야말로 이상한 것들입니다. 상상속의 신비감을 자극하는 신화 속의 동물과 직접 연결되어 있는 동물들이 있는가하면, 현실에서 발견된 것으로 과학적으로 널리 알려진 희귀종들도 조금씩 섞여 있습니다. 이 책이 특히 흥미를 끄는 것은 어렴풋하게 형체만 나온 윤곽이나 상상도 따위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진 자료가 선명하고도 화끈하게 팍팍 실려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본문 내용도 목격 자체를 위한 목격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동물들을 열심히 관찰해서 그 습성과 진화론적인 계통을 추정한 내용까지 상세하게 밝혀 놓고 있습니다. "나는 용을 보았어요! 진짜라니깐요~" 그러고 마는 것이 아니라, 파충류들이 어떻게 진화해서 용이 되었는지, 살아가는 습성은 어떻고 어떻게해서 입에서 불을 뿜을 수 있는 기능을 몸이 갖추게 되었는지 열심히 조사하고 관찰하고 탐구해서 써 놓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마이젠하우펜 박사는 이 동물들의 실질적인 발견자로서 동물에 스스로 정식 "학명"을 붙여 놓고 있기도 합니다.
(날개 달린 사자 모양 동물의 화석 자료. 그리폰의 원류?)
이 책에 나오는 동물들의 대강을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 불을 뿜는 용과 같은 도마뱀
- 거북이 등껍질이 달린 오리 모양의 새
- 언어를 갖고 있는 반은 말이고 반은 원숭이인 켄타우로스와 같은 동물
- 공룡과 흡사한 바다 속에 사는 파충류
- 토끼 처럼 뛸 수 있는 다리가 달린 오리
- 날개와 뿔이 달린 원숭이
- 새의 다리의 모양과 비슷한 다리가 지네처럼 여러 쌍이 달린 뱀
- 몸은 두 개에 머리는 하나인 산양
- 날개 달린 사자
- 아르마딜로
- 햇빛을 받으면 타들어가는 달팽이
- 거북이와 같은 이마를 가진 대머리 여우
- 피를 빨 듯 긴 송곳니를 가진 토끼
- 오리너구리
- 뱀 모양의 꼬리를 갖고 있는 커다란 쥐
- 다리와 손 모양의 촉수가 달려 있는 조개
사진 자료가 풍부하고 조사 내용이 체제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의 내용은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정말로 이런 동물들이 세계 어딘가에 있다는 것인지 뭔지"하는 신기한 감정을 줄만합니다. 특히 해괴한 동물들 사이에, 아르마딜로 라든가 오리너구리처럼 신기하기는 하지만 실제로 멀쩡하게 존재하는 동물들이 섞여 있기도 해서, 다른 동물들도 마찬가지로 다 존재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만도 합니다.
그렇기는 합니다만, 역시 들여다보면 볼 수록 의심스러운 면이 많기도 합니다. 일단은 동물들 중에 진화의 흐름에서 저렇게 생겨 먹은 생물이 무리를 이루고 것은 너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들이 많습니다. 더우기 그러면서도 이 책에서 소개하는 사진자료라는 것들은 기본적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동물들을 단순히 짜집기 하거나 약간 꾸며 내면 쉽게 만들어 낼 수 있을 듯한 것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서 거북이 등껍질 같은 것이 달린 새는 새를 한마리 잡아서 거북이 등껍질을 붙여 놓고 원래 이렇게 생긴 동물이라고 지어내서 사진을 찍으면 찍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옛날부터, 피지 인어(Fiji Mermaid) http://hehehe.co.kr/wikikiwi/wkct_FeejeeMermaid.htm 같은 것들 처럼 동물들의 박제를 짜집기하거나 간단한 사진 조작을 통해서 신기한 모양을 만드는 것들은 있어 왔기 때문에, 이 책에 실린 동물들도 그런식으로 만든 조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동물이닷!: 에이, 진짜 새에다가 등껍질 붙인 거 아냐?)
그렇다면, 도대체 이 책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입니까?
우선 한 가지 생각해 볼 만한 것은, 요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게임도 마찬가지입니다만, 대한민국에서 나온 것 중에 좀 특이하게 흥미롭고 신기하다 싶은 것은 일단 일본것을 베껴온 것을 의심해 봐야 한다는 점입니다. 여기에 근거를 두고 좀 더 앞뒤 상황을 알아 보면, 이 책의 진정한 의미와 재미가 확연히 드러나게 됩니다.
일단 이 책,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동물 이야기"의 원류에 대해서 확실하게 밝히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자료의 출처로 달랑 "아마이젠하우펜 박사" 이름만 달고 있을 뿐 아무 설명이 없고, 그저 엮은이로 "이현모"라는 사람의 이름을 소개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확실히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만, 책의 출간 시점과 엮인 상태, 체제를 따져 봐서,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면, 이 책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동물 이야기"는 일본책 "비밀의 동물지(秘密の動物誌)"를 베낀 것이거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서 출시된 책일 가능성이 높다고 저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일본책, 비밀의 동물지)
그렇다면, "비밀의 동물지"라는 책은 어떻게 나온 것인고 하니, 바로 스페인의 전위 예술가, 개념 예술가(conceptual artist) Joan Fontcuberta가 Pere Formiguera와 함께 만들어낸 일련의 전시, 출시용 "작품"인 "Fauna" 시리즈를 엮어 놓은 것입니다.
즉, 정말로 있을 법하고 그럴 듯하게 사진과 자료를 꾸며서 그 현실감과 신비감을 높여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흥미로운 감상에 흠뻑 빠질 수 있게 분위기를 꾸며 놓은 지어낸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그냥 "용"의 상상화를 붓으로 그려 놓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과학과 학문의 틀을 가져와 더 많은 현실들을 같이 꾸며 놓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말로 세상 어느 한 구석에 용을 닮은 생물이 산다는 느낌이 흠뻑 나도록, "용"의 사진을 잘 조합해서 그럴싸하게 꾸며 놓고, 용을 관찰한 내용과 용에 대한 생물학, 계보학 적인 내용을 나름대로 꾸며 놓고, 심지어 용에 대해 조사하러 간 일행들의 이야기에 대해서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정말로 그런 생물이 우리 세상에 있는 것처럼 다 만들어 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작품들은 포스트 모더니즘의 한 부분을 그야말로 대표적으로 선보인다고 할 수 있을만한 시도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고, 보기에 따라서는 은서동물학을 소재로한 하드SF 물을 극한까지 한 번 끌고 가 본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련의 "Fauna" 시리즈들은 집대성 되고, 심지어 아마이젠하우펜 박사에 대한 사람들의 인터뷰 동영상까지 기획의 일부로 모여서 뉴욕의 MoMA에서 전시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Fauna 시리즈는 꽤 인기를 끌면서 세계 여러 나라에 알려졌고, 그 중에 바로, "일본"에서도 전시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 바로 이 전시의 내용을 정리한 또 하나의 가짜 보고서 책자 모양의 책으로 꾸민 것 즉 "Fauna Secreta"이고, 그 일본판이 "비밀의 동물지"가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마이젠하우펜 박사나 그의 조수는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고, 그 사람들의 존재와 이야기들 그 사람들이 남겼다는 온갖 형태의 자료들과 삶의 흔적들은 모조리 작가들이 신기하라고 정교하게 꾸며낸, 묘한 형태의 작품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사진 촬영 이전에 남긴 박사와 조수의 스케치)
여기서부터는 막연한 제 추측입니다만, 아마도 한국의 출판사에서는 이러한 사정을 잘 모르고 일본의 "비밀의 동물지"만을 보고 이 내용 자체가 어떤 예술작품이라는 것을 몰랐던 듯 합니다. 진짜 과학 발견을 기록한 것인지, 야바위 꾼이 신문에 사진 팔아 먹으려고 사기 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일종의 사실 보도 자료의 형태를 갖춘 것이라고 한국의 출판사 측에서는 생각했지 싶습니다.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사실에 대한 보도 자료를 모아서 새로운 책으로 꾸미는 것은 당연히 저작권 침해가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일본의 "비밀의 동물지"를 재조정해서 한국의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동물 이야기"로 꾸며낸 것 아닌가하고 저는 추정하고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우리나라의 조악한 저작권 문화와 부실한 문화에 대한 이해력이 겹쳐서 이루어진 실수인데, 기이하게도 이런 실수가 벌어져 탄생한 책이 있다는 것 자체가 또한 오묘한 포스트 모더니즘의 표현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시 듭니다.
(뿔과 날개가 달린 원숭이: 이것은 시뮬라시옹? 시뮬라크르?)
이 책,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동물 이야기"는 이 책에 소개 되어 있는 내용이 진짜일까, 가짜일까 고민하는 것이 분명히 즐길만한 재미거리 입니다. 그래서 같이 책을 읽은 사람들과 진짜다 가짜다 격렬히 토론하고 증명하고 나름대로 의심하고 안타까워 하고 하면서 보는 것이 이 책에서 맛볼 수 있는 중요한 재미이긴 합니다. 그렇습니다만, 지어낸 까자라고 생각하고 내용들을 봐도 그대로 또 그만의 멋진 재미가 있습니다.
이 책은 그 자체로 은서동물학을 소재로 한 훌륭한 하드SF 물이 되어 줍니다. 은서동물학이 다루는 SF라고 하면 쉽게 떠오르는 것은, 공룡 괴물에게 습격 당해서 주인공들이 도망치고 싸우고 하는 동안 남녀주인공이 연애하고 하는 이야기들이 생각날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아슬아슬한 추격전 장면도 있어야 할 것이고, 무서운 공포 장면도 있어야 할 것이고, 여자 주인공의 아름다움에 대한 묘사나 현대과학 만능주의에 대한 경고 따위의 교훈도 한 자락 들어가야 재미난 소설이라고 출판사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신문에다 광고내고 책 찍어 줄 것입니다.
(이런 놈이 나오면 아버지께서 물려주신 칼을 마침 품고 있다가 찔러서 싸워야지!: 일본 홋카이도 일대에 사는 것으로 되어 있는 공룡 스러운 동물. 책에 나오는 학명은 Koch Basilosaurus)
그런데, 이 책은 주인공이 괴물에게 쫓기면서 배신과 음모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 그딴 잡 줄거리 아무것도 안해도 충분히 경이로운 읽을 거리로 재미를 줄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막판에 드러나는 충격적인 대반전 속에서 처절한 주인공의 사투 뭐 이런 것이 아니라, 대신에 이 진기한 동물을 계통한 적으로 어떤 계통으로 분류해야 하는 것인가 고민하는 것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 재미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자 주인공과 헐리우드 영화에서 베껴온 "재치있는 대사"라는 것을 나누면서 사랑을 속삭이지 않고, 대신에 도대체 이 동물이 어떤 학명을 갖고 있어야 마땅하고, 어떤 해부학적 구조를 갖고 있는지 탐구하는 내용을 보고서 형태로 서술해 놓는 것만으로 독자에게 흥미와 몰입을 불러오는 재미거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책에는 한스의 불우한 어린 시절이라든가, 사실은 출생의 비밀을 갖고 있었지만 중국에서 노예로 살다가 다시 한반도 안으로 돌아와서 임금 같이 되는 아마이젠하우펜 박사의 무용담 따위는 없습니다. 대신에 동물을 X선 촬영한 결과로 뽑은 사진이 한 장 더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컴퓨터 게임 개발 업계나 일본만화식으로 말하면, "본편 줄거리" 없이 "설정집"을 독립된 내용으로 뻥튀기 하는 것만으로 재미난 읽을 거리로 꾸밀 수 있다는 것입니다. "팩션"이라고 제목 달아 놓고 "우리 나라가 옛날에는 진짜 진짜 진짜 진짜 진짜 위대한 나라였다아아아아아아아!" 라고 이상하게 처절하게 울부짖는 역사 소설 대신에, 정말로 사실과 학문의 영역을 흉내내서 얻을 수 있는 재미거리가 뭔지 이 책은 맛볼 수 있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은 과학이나 학문 탐구 분야를 소재로 하는 이야기들의 맛이 어떤 것인지 한 전형을 드러낸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현실적이고 사실감 있게 꾸민 보고서 형태의 내용만으로도, 독자는 신비로운 오지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동물을 보고 싶다는 그 원초적인 인간의 호기심과 탐험심을 불사를 수 있는 것입니다. 사진과 함께 붙어 있는 기묘한 습성에 대한 내용을 읽으면서 머나먼 정글 깊숙한 곳을 헤치고 단 한 번도 널리 알려진 적이 없는 미지의 세계에 다가가서 놀라운 생물을 보고 느끼는 경이를 마음 속에 일깨우게 하는 것입니다.
(손과 다리 모양이 달려 있는 조개. 온순한 동물이므로 이렇게 "악수"를 하는 신비로운 체험을 해 볼 수도 있습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사진의 질이 평범한 조작 사진 정도에 그치고 있고, 어린이용으로 편집된 것이라서 동물들에 대한 기록 자체가 부족하다는 면은 어쩔 수 없는 한계입니다. 그렇습니다만, 내용 중에는 SF 시각으로 보았을 때 그 소재의 상상력 자체가 흥미를 끄는 대목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 책에는 "반은 원숭이이고 반은 말인 켄타우로스 같은 동물(학명: Centaurus Neandertalensis)"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동물에 대해서 연구한 결과로 이 책에서 제시한 것이 바로 이 동물은 먼 옛날 네안데르탈인이 진화한 결과 같다는 것입니다. "네안데르탈인"은 인간과 함께 지구상에 살았지만 "인간은 아닌" 지적 생명체라는 점에서 외계인과 비슷한 SF물의 단골 소재라면 단골 소재입니다. 그러다보니, 예티나 빅풋과 같은 설인들을 네안데르탈인이 숨어서 사는 것이라고 가정하고 나온 이야기들 도 있습니다.(바야바아아아아아-) 그런데, 이 책은 바로 그 네안데르탈인들이 한 번 더 진화해서 켄타우로스처럼 되었고, 한때는 여기저기 퍼져서 살고 있어서 고대 그리스인들의 신화에도 흔적을 남겼다는 식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네안데르탈인의 새로운 진화 형태를 발견하다: 이들은 인간처럼 자신들만의 언어도 갖고 있습니다.)
이 책은 사실, 소년중앙 사이에 끼어 있는 믿거나 말거나 잡기사로 굴러 다니는 미국 타블로이드지 이야기를 일본에서 번역한 것을 다시 번역한 어린이용 잡스러운 책 정도로 그냥 묻혀 버렸습니다. 책이 정상적인 경로로 똑바로 들어와서, 이 책에 실린 내용이 성립된 경위나 진정한 이 책의 위치가 좀 더 제대로 알려지고 넓게 이야기 되었다면 훨씬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랬다면 좀 더 넓은 분야에서 이야기되고 논의 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하다 못해, 이 책이 진짜인가 가짜인가 하면서 흥미롭게 읽는 어린이에게 나중에 포스트 모더니즘의 묘미가 무엇인지 설명할 때 좋은 자료가 될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 제 혼자의 추측과 기억에 의존해 쓴 부분이 많습니다. 잘못된 부분, 다른 정보 있으신 분은 간략하게 대충이라도 덧글로 남겨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본문에 수정하거나 추가할 내용이 필요하다면 가능한한 빨리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밖에...
용의 화석을 발견해서 용의 생태와 습성에 대해서 연구한 내용을 다큐멘터리 형태로 꾸민, 2004년작 "드래곤 판타지 (Dragon's World : A Fantasy Made Real)" 같은 것은 이 책과 거의 비슷한 형태의 재미를 영상화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읽어보지는 않았습니다만, 이 책의 인기를 등에 업고 아마이젠하우펜과 상관 없는 다른 내용으로 꾸민 같은 제목의 책 3권, 4권도 나온 것으로 압니다
(책 표지)
일본식으로 말해서 "은서동물학"이라고 불리우는 이 소재는 세상 구석진 곳에 모습을 숨기고 있는 매우 기이한 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것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역시 네스호의 깊은 물속에 있다고 하는 괴물에 관한 것이라든가, 아프리카의 정글 깊숙한 곳 사람이 닿지 못하는 곳에 아직도 공룡이 남아 있다는 따위의 이야기를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거대한 배를 부술 수 있을 만큼 거대한 뱀 모양의 괴물이 넓은 바다를 헤메고 다닌다는 것도 벌써 몇백년째 내려오는 기이한 동물 목격담일 것입니다. 듀나가 쓴 "선중조우"같은 단편소설은 엄청난 줄거리가 없더라도 은서동물학의 신비로운 향취를 그려내는 것만으로 얼마나 재미난 읽을 거리가 되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은서동물학을 다룬다는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동물 이야기"라는 책의 내용은 무엇인고하니, 아마이젠하우펜이라는 사람이 세계 구석구석을 이상한 동물을 찾아 힘들게 탐험하면서 정말로 기이한 희귀 생물을 찾아냈는데, 아마이젠하우펜 박사가 실종되어버려서 기록이 묻혀 있었던 것을, 그것이 발굴되었으므로 책으로 엮어 소개한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이 책에서는 일지 기록을 토대로 아마이젠하우펜 박사와 그의 조수 한스가 함께 다니는 이야기들을 꾸며서 탐험담을 읽어 내려갈 수 있게 하면서, 아마이젠하우펜 박사가 남겼다는 사진 자료와 스케치, 보고 문건 등을 같이 자료로 실어 놓고 있습니다.
(책에 실려 있는 어느 희귀한 동물의 발견 사진 자료)
(아마이젠하우펜이 남긴 물속에 사는 거대한 파충류에 대한 스케치 자료)
아마이젠하우펜은 독일의 루트비히 막시밀리안 대학에서 재직하고 있던 교수입니다만, 30년대에 나치스의 전횡이 너무 심해져서 미국으로 이주하여 살게 된 인물입니다. 아마이젠하우펜은 그렇게 하여 50년에 실종될 때까지 세계의 오지를 탐험하면서 50년대까지만 해도 남아 있던 각종 희귀 생물을 관찰하고 기록을 남긴 것입니다.
이 책에 실린 아마이젠하우펜 박사가 세계의 가장 깊숙한 곳들만을 헤집고 다니면서 찾아냈다는 기이한 동물들은 그야말로 이상한 것들입니다. 상상속의 신비감을 자극하는 신화 속의 동물과 직접 연결되어 있는 동물들이 있는가하면, 현실에서 발견된 것으로 과학적으로 널리 알려진 희귀종들도 조금씩 섞여 있습니다. 이 책이 특히 흥미를 끄는 것은 어렴풋하게 형체만 나온 윤곽이나 상상도 따위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진 자료가 선명하고도 화끈하게 팍팍 실려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본문 내용도 목격 자체를 위한 목격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동물들을 열심히 관찰해서 그 습성과 진화론적인 계통을 추정한 내용까지 상세하게 밝혀 놓고 있습니다. "나는 용을 보았어요! 진짜라니깐요~" 그러고 마는 것이 아니라, 파충류들이 어떻게 진화해서 용이 되었는지, 살아가는 습성은 어떻고 어떻게해서 입에서 불을 뿜을 수 있는 기능을 몸이 갖추게 되었는지 열심히 조사하고 관찰하고 탐구해서 써 놓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마이젠하우펜 박사는 이 동물들의 실질적인 발견자로서 동물에 스스로 정식 "학명"을 붙여 놓고 있기도 합니다.
(날개 달린 사자 모양 동물의 화석 자료. 그리폰의 원류?)
이 책에 나오는 동물들의 대강을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 불을 뿜는 용과 같은 도마뱀
- 거북이 등껍질이 달린 오리 모양의 새
- 언어를 갖고 있는 반은 말이고 반은 원숭이인 켄타우로스와 같은 동물
- 공룡과 흡사한 바다 속에 사는 파충류
- 토끼 처럼 뛸 수 있는 다리가 달린 오리
- 날개와 뿔이 달린 원숭이
- 새의 다리의 모양과 비슷한 다리가 지네처럼 여러 쌍이 달린 뱀
- 몸은 두 개에 머리는 하나인 산양
- 날개 달린 사자
- 아르마딜로
- 햇빛을 받으면 타들어가는 달팽이
- 거북이와 같은 이마를 가진 대머리 여우
- 피를 빨 듯 긴 송곳니를 가진 토끼
- 오리너구리
- 뱀 모양의 꼬리를 갖고 있는 커다란 쥐
- 다리와 손 모양의 촉수가 달려 있는 조개
사진 자료가 풍부하고 조사 내용이 체제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의 내용은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정말로 이런 동물들이 세계 어딘가에 있다는 것인지 뭔지"하는 신기한 감정을 줄만합니다. 특히 해괴한 동물들 사이에, 아르마딜로 라든가 오리너구리처럼 신기하기는 하지만 실제로 멀쩡하게 존재하는 동물들이 섞여 있기도 해서, 다른 동물들도 마찬가지로 다 존재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만도 합니다.
그렇기는 합니다만, 역시 들여다보면 볼 수록 의심스러운 면이 많기도 합니다. 일단은 동물들 중에 진화의 흐름에서 저렇게 생겨 먹은 생물이 무리를 이루고 것은 너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들이 많습니다. 더우기 그러면서도 이 책에서 소개하는 사진자료라는 것들은 기본적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동물들을 단순히 짜집기 하거나 약간 꾸며 내면 쉽게 만들어 낼 수 있을 듯한 것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서 거북이 등껍질 같은 것이 달린 새는 새를 한마리 잡아서 거북이 등껍질을 붙여 놓고 원래 이렇게 생긴 동물이라고 지어내서 사진을 찍으면 찍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옛날부터, 피지 인어(Fiji Mermaid) http://hehehe.co.kr/wikikiwi/wkct_FeejeeMermaid.htm 같은 것들 처럼 동물들의 박제를 짜집기하거나 간단한 사진 조작을 통해서 신기한 모양을 만드는 것들은 있어 왔기 때문에, 이 책에 실린 동물들도 그런식으로 만든 조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동물이닷!: 에이, 진짜 새에다가 등껍질 붙인 거 아냐?)
그렇다면, 도대체 이 책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입니까?
우선 한 가지 생각해 볼 만한 것은, 요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게임도 마찬가지입니다만, 대한민국에서 나온 것 중에 좀 특이하게 흥미롭고 신기하다 싶은 것은 일단 일본것을 베껴온 것을 의심해 봐야 한다는 점입니다. 여기에 근거를 두고 좀 더 앞뒤 상황을 알아 보면, 이 책의 진정한 의미와 재미가 확연히 드러나게 됩니다.
일단 이 책,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동물 이야기"의 원류에 대해서 확실하게 밝히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자료의 출처로 달랑 "아마이젠하우펜 박사" 이름만 달고 있을 뿐 아무 설명이 없고, 그저 엮은이로 "이현모"라는 사람의 이름을 소개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확실히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만, 책의 출간 시점과 엮인 상태, 체제를 따져 봐서,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면, 이 책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동물 이야기"는 일본책 "비밀의 동물지(秘密の動物誌)"를 베낀 것이거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서 출시된 책일 가능성이 높다고 저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일본책, 비밀의 동물지)
그렇다면, "비밀의 동물지"라는 책은 어떻게 나온 것인고 하니, 바로 스페인의 전위 예술가, 개념 예술가(conceptual artist) Joan Fontcuberta가 Pere Formiguera와 함께 만들어낸 일련의 전시, 출시용 "작품"인 "Fauna" 시리즈를 엮어 놓은 것입니다.
즉, 정말로 있을 법하고 그럴 듯하게 사진과 자료를 꾸며서 그 현실감과 신비감을 높여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흥미로운 감상에 흠뻑 빠질 수 있게 분위기를 꾸며 놓은 지어낸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그냥 "용"의 상상화를 붓으로 그려 놓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과학과 학문의 틀을 가져와 더 많은 현실들을 같이 꾸며 놓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말로 세상 어느 한 구석에 용을 닮은 생물이 산다는 느낌이 흠뻑 나도록, "용"의 사진을 잘 조합해서 그럴싸하게 꾸며 놓고, 용을 관찰한 내용과 용에 대한 생물학, 계보학 적인 내용을 나름대로 꾸며 놓고, 심지어 용에 대해 조사하러 간 일행들의 이야기에 대해서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정말로 그런 생물이 우리 세상에 있는 것처럼 다 만들어 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작품들은 포스트 모더니즘의 한 부분을 그야말로 대표적으로 선보인다고 할 수 있을만한 시도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고, 보기에 따라서는 은서동물학을 소재로한 하드SF 물을 극한까지 한 번 끌고 가 본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련의 "Fauna" 시리즈들은 집대성 되고, 심지어 아마이젠하우펜 박사에 대한 사람들의 인터뷰 동영상까지 기획의 일부로 모여서 뉴욕의 MoMA에서 전시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Fauna 시리즈는 꽤 인기를 끌면서 세계 여러 나라에 알려졌고, 그 중에 바로, "일본"에서도 전시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 바로 이 전시의 내용을 정리한 또 하나의 가짜 보고서 책자 모양의 책으로 꾸민 것 즉 "Fauna Secreta"이고, 그 일본판이 "비밀의 동물지"가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마이젠하우펜 박사나 그의 조수는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고, 그 사람들의 존재와 이야기들 그 사람들이 남겼다는 온갖 형태의 자료들과 삶의 흔적들은 모조리 작가들이 신기하라고 정교하게 꾸며낸, 묘한 형태의 작품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사진 촬영 이전에 남긴 박사와 조수의 스케치)
여기서부터는 막연한 제 추측입니다만, 아마도 한국의 출판사에서는 이러한 사정을 잘 모르고 일본의 "비밀의 동물지"만을 보고 이 내용 자체가 어떤 예술작품이라는 것을 몰랐던 듯 합니다. 진짜 과학 발견을 기록한 것인지, 야바위 꾼이 신문에 사진 팔아 먹으려고 사기 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일종의 사실 보도 자료의 형태를 갖춘 것이라고 한국의 출판사 측에서는 생각했지 싶습니다.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사실에 대한 보도 자료를 모아서 새로운 책으로 꾸미는 것은 당연히 저작권 침해가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일본의 "비밀의 동물지"를 재조정해서 한국의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동물 이야기"로 꾸며낸 것 아닌가하고 저는 추정하고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우리나라의 조악한 저작권 문화와 부실한 문화에 대한 이해력이 겹쳐서 이루어진 실수인데, 기이하게도 이런 실수가 벌어져 탄생한 책이 있다는 것 자체가 또한 오묘한 포스트 모더니즘의 표현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시 듭니다.
(뿔과 날개가 달린 원숭이: 이것은 시뮬라시옹? 시뮬라크르?)
이 책,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동물 이야기"는 이 책에 소개 되어 있는 내용이 진짜일까, 가짜일까 고민하는 것이 분명히 즐길만한 재미거리 입니다. 그래서 같이 책을 읽은 사람들과 진짜다 가짜다 격렬히 토론하고 증명하고 나름대로 의심하고 안타까워 하고 하면서 보는 것이 이 책에서 맛볼 수 있는 중요한 재미이긴 합니다. 그렇습니다만, 지어낸 까자라고 생각하고 내용들을 봐도 그대로 또 그만의 멋진 재미가 있습니다.
이 책은 그 자체로 은서동물학을 소재로 한 훌륭한 하드SF 물이 되어 줍니다. 은서동물학이 다루는 SF라고 하면 쉽게 떠오르는 것은, 공룡 괴물에게 습격 당해서 주인공들이 도망치고 싸우고 하는 동안 남녀주인공이 연애하고 하는 이야기들이 생각날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아슬아슬한 추격전 장면도 있어야 할 것이고, 무서운 공포 장면도 있어야 할 것이고, 여자 주인공의 아름다움에 대한 묘사나 현대과학 만능주의에 대한 경고 따위의 교훈도 한 자락 들어가야 재미난 소설이라고 출판사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신문에다 광고내고 책 찍어 줄 것입니다.
(이런 놈이 나오면 아버지께서 물려주신 칼을 마침 품고 있다가 찔러서 싸워야지!: 일본 홋카이도 일대에 사는 것으로 되어 있는 공룡 스러운 동물. 책에 나오는 학명은 Koch Basilosaurus)
그런데, 이 책은 주인공이 괴물에게 쫓기면서 배신과 음모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 그딴 잡 줄거리 아무것도 안해도 충분히 경이로운 읽을 거리로 재미를 줄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막판에 드러나는 충격적인 대반전 속에서 처절한 주인공의 사투 뭐 이런 것이 아니라, 대신에 이 진기한 동물을 계통한 적으로 어떤 계통으로 분류해야 하는 것인가 고민하는 것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 재미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자 주인공과 헐리우드 영화에서 베껴온 "재치있는 대사"라는 것을 나누면서 사랑을 속삭이지 않고, 대신에 도대체 이 동물이 어떤 학명을 갖고 있어야 마땅하고, 어떤 해부학적 구조를 갖고 있는지 탐구하는 내용을 보고서 형태로 서술해 놓는 것만으로 독자에게 흥미와 몰입을 불러오는 재미거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책에는 한스의 불우한 어린 시절이라든가, 사실은 출생의 비밀을 갖고 있었지만 중국에서 노예로 살다가 다시 한반도 안으로 돌아와서 임금 같이 되는 아마이젠하우펜 박사의 무용담 따위는 없습니다. 대신에 동물을 X선 촬영한 결과로 뽑은 사진이 한 장 더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컴퓨터 게임 개발 업계나 일본만화식으로 말하면, "본편 줄거리" 없이 "설정집"을 독립된 내용으로 뻥튀기 하는 것만으로 재미난 읽을 거리로 꾸밀 수 있다는 것입니다. "팩션"이라고 제목 달아 놓고 "우리 나라가 옛날에는 진짜 진짜 진짜 진짜 진짜 위대한 나라였다아아아아아아아!" 라고 이상하게 처절하게 울부짖는 역사 소설 대신에, 정말로 사실과 학문의 영역을 흉내내서 얻을 수 있는 재미거리가 뭔지 이 책은 맛볼 수 있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은 과학이나 학문 탐구 분야를 소재로 하는 이야기들의 맛이 어떤 것인지 한 전형을 드러낸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현실적이고 사실감 있게 꾸민 보고서 형태의 내용만으로도, 독자는 신비로운 오지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동물을 보고 싶다는 그 원초적인 인간의 호기심과 탐험심을 불사를 수 있는 것입니다. 사진과 함께 붙어 있는 기묘한 습성에 대한 내용을 읽으면서 머나먼 정글 깊숙한 곳을 헤치고 단 한 번도 널리 알려진 적이 없는 미지의 세계에 다가가서 놀라운 생물을 보고 느끼는 경이를 마음 속에 일깨우게 하는 것입니다.
(손과 다리 모양이 달려 있는 조개. 온순한 동물이므로 이렇게 "악수"를 하는 신비로운 체험을 해 볼 수도 있습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사진의 질이 평범한 조작 사진 정도에 그치고 있고, 어린이용으로 편집된 것이라서 동물들에 대한 기록 자체가 부족하다는 면은 어쩔 수 없는 한계입니다. 그렇습니다만, 내용 중에는 SF 시각으로 보았을 때 그 소재의 상상력 자체가 흥미를 끄는 대목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 책에는 "반은 원숭이이고 반은 말인 켄타우로스 같은 동물(학명: Centaurus Neandertalensis)"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동물에 대해서 연구한 결과로 이 책에서 제시한 것이 바로 이 동물은 먼 옛날 네안데르탈인이 진화한 결과 같다는 것입니다. "네안데르탈인"은 인간과 함께 지구상에 살았지만 "인간은 아닌" 지적 생명체라는 점에서 외계인과 비슷한 SF물의 단골 소재라면 단골 소재입니다. 그러다보니, 예티나 빅풋과 같은 설인들을 네안데르탈인이 숨어서 사는 것이라고 가정하고 나온 이야기들 도 있습니다.(바야바아아아아아-) 그런데, 이 책은 바로 그 네안데르탈인들이 한 번 더 진화해서 켄타우로스처럼 되었고, 한때는 여기저기 퍼져서 살고 있어서 고대 그리스인들의 신화에도 흔적을 남겼다는 식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네안데르탈인의 새로운 진화 형태를 발견하다: 이들은 인간처럼 자신들만의 언어도 갖고 있습니다.)
이 책은 사실, 소년중앙 사이에 끼어 있는 믿거나 말거나 잡기사로 굴러 다니는 미국 타블로이드지 이야기를 일본에서 번역한 것을 다시 번역한 어린이용 잡스러운 책 정도로 그냥 묻혀 버렸습니다. 책이 정상적인 경로로 똑바로 들어와서, 이 책에 실린 내용이 성립된 경위나 진정한 이 책의 위치가 좀 더 제대로 알려지고 넓게 이야기 되었다면 훨씬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랬다면 좀 더 넓은 분야에서 이야기되고 논의 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하다 못해, 이 책이 진짜인가 가짜인가 하면서 흥미롭게 읽는 어린이에게 나중에 포스트 모더니즘의 묘미가 무엇인지 설명할 때 좋은 자료가 될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 제 혼자의 추측과 기억에 의존해 쓴 부분이 많습니다. 잘못된 부분, 다른 정보 있으신 분은 간략하게 대충이라도 덧글로 남겨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본문에 수정하거나 추가할 내용이 필요하다면 가능한한 빨리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밖에...
용의 화석을 발견해서 용의 생태와 습성에 대해서 연구한 내용을 다큐멘터리 형태로 꾸민, 2004년작 "드래곤 판타지 (Dragon's World : A Fantasy Made Real)" 같은 것은 이 책과 거의 비슷한 형태의 재미를 영상화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읽어보지는 않았습니다만, 이 책의 인기를 등에 업고 아마이젠하우펜과 상관 없는 다른 내용으로 꾸민 같은 제목의 책 3권, 4권도 나온 것으로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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