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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를 능숙하게 말한다는 것은 사실 어렵다. 외국어가 재미있으면 싶지만 왜 그리 단어 생각이 안 나고 막상 외국 사람을 만나도 할 말이 없는지, 이 또한 철학 부재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철학으로 데뷔(?)를 할까 해서 개똥철학이라도 없나 하고 생각해봤다. 서양철학, 동양철학 조금 안다 하는 말은 사실 철학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건 ‘인생 철학’이다. 바꿔 말하면 ‘난 이런 사람이다’ 또는 ‘난 이렇게 산다’ 하는 것이다.
자신의 철학이 행복인 사람들은 밤이나 낮이나 행복이 어떻고, 감사하는 마음이 어떻고, 그래서 “살 만한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 같은 말을 하지만 그것도 피곤한 일이다. 왜냐하면 행복에 너무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찰나 도반(道伴) 후배 교무가 마치 ‘당신을 위해 인생 교훈 하나를 보내겠소’ 하듯 글을 하나 보내왔다.
제목: 인생 교훈
1. 갈까 말까 할 때는 가거라.
2. 줄까 말까 할 때는 주거라.
3. 말할까 말까 할 때는 말하지 마라.
4. 먹을까 말까 할 때는 먹지 마라.
5. 살까 말까 할 때는 사지 마라.
곰곰이 생각해보니 인생을 살면서 이 다섯 가지만 잘해도 인생 철학은 ‘끝’이다. 난 가끔 이 내용을 암기하면서 생활에 적응시키고 있다. 잘하는 짓인지 아니면 못하는 짓인지는 세월이 흘러 후회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누구는 버킷 리스트를 만들어 여행을 떠나고 남 안 하는 짓을 해야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고 하는데, 현대인의 ‘행복 결핍 증후군’에 대한 진실은 오히려 조금 불편함과 조금 부족함이 그 행복의 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거유 송시열 선생은 ‘다언삭궁(多言數窮)’, 즉 말을 많이 하게 되면 결국은 궁벽한 처지에 당하노니 비록 생각이 많더라도 말을 조심하고 그 뜻을 담담하게 하라며 선비의 기본 틀인 신독(愼獨)에 초점을 맞추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 말이나 생각이나 또는 삶의 이야기조차 어떤 때는 불필요한 소음처럼 들린다. 이럴 때 내 마음은 철학 부재인가, 아니면 감정 조절 부재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니체는 인간의 삶이 결국 둘 중의 하나라고 했다. ‘유치하거나, 순수하거나’.
며칠 전 인연이 있어 잠시 중국 베이징에 다녀왔다. 가는 곳마다 넘쳐나는 사람들과 왁자지껄한 소음이 있었지만 그것도 시절 인연이라 생각하니 마음은 오히려 한가할 뿐이었다. 그 시절에 그렇게 만났던 인연들도 알고 보면 모두 자연스러운 기연자연(起緣自然)한 일인지도 모른다.
정은광 원광대학교 미술관 학예사. 미학을 전공했으며 수행과 선그림(禪畵)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 『마음을 소유하지 마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