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경쟁력

[스크랩] 똘레랑스가 필요하다

게디 2013. 8. 23. 13:55

업무를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주말을 앞둔 금요일 오후에라도 급한 일을 시켜야 할 때가 있다. 이런 리더에겐성과를 내서 조직에서 인정을 받는 게 아주 중요하다. 그래서 주말이라도 일을 하는 건 당연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일을 받아서 해야 하는 어떤 팀원의 생각은 다르다. ‘주말엔 좀 쉬게 해 줘야지, 미리미리 안 시키고 왜 꼭 이런 날에 일을 시키실까?’ 이런 직원의 머리 속엔주말은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많다. 이런 경우, 리더와 부하직원 간에 드러나진 않지만 갈등이 숨어있게 된다. 이 두 사람, 누가 맞고 누가 틀린 걸까? 어느 한 사람의 손을 들어주긴 쉽지 않다.
 
이런 것을가치의 차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가치의 차이는다름의 문제다. 20세기 주요 정치 이데올로기의 하나인 파시즘. 이들은 가치에 있어서도 우월한 게 있고 열등한 게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이것이나치즘과 같은 형태로 변형되어 전 세계를 전쟁터로 만들었다. 게르만 민족은 절대 선이고 유대인은 열등하고 악이라고 믿은 히틀러 때문에. 이렇게가치의 차이를 우열의 기준으로 보는 건 정말 위험하다.
 
비즈니스에서도 종종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밑바닥에서 시작해 어느 정도의 성공 경험을 쌓아놓은 분들. 이런 분들은 직원들에 대한 불만이 아주 많다. “애들 보면 항상 정신을 못 차려. 6시만 땡 하면 집에 가. 열심히 일해서 성공할 생각을 해야지. 요즘 애들은 정신력이 부족해라고 한탄한다. 그러나 이건 누구의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다를 뿐이다. 사장에게 중요한 가치는 성공과 돈이다. 그러나 부하의 가치는 돈보다는 가정, 직장 생활과 개인 생활의 균형(work & life balance)일수도 있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지칫하다간 `폭군`으로 돌변할 수도 있다.
 
가치의 충돌이 아주 드라마틱하게 나타난 상황이 있다. 바로 축구 경기장, 그것도 월드컵 결승전의 한 장면이다. 축구팬이 아니라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 정도는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축구팬이라면, 그것만큼 강렬하게 기억되는 장면이 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결승전에서 벌어진사건이다. 1:1로 팽팽히 맞서 결국 연장전까지 가게 된 두 나라. 사건은 연장전 후반 3분에 벌어졌다. 프랑스의 주장 완장을 차고, 결승전에서 선제골까지 넣는 등 맹활약을 보이던 지단 선수가 공이 아닌 상대 마테라치 선수의 가슴에다 헤딩을 하고 퇴장당한 것.
많은 사람들은 지단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축구 선수에게 월드컵 결승전만큼 중요한 경기는 또 없을 텐데, 그 경기를 망쳐버렸으니까. 게다가 지단은 그 경기를 마지막으로 국가대표 은퇴까지 선언한 상태였다. 지단의 행동에 대해 많은 언론이 사건의 배후를 알아봤다. 그리고 상대 선수가 지단의가족에 대해 험담을 했다고 보도했다. 그렇다. 지단에겐 축구 선수로서의 영광보다 가족을 아끼고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것이다.
 
이렇게 말해도, 우리는 지단의 행동을 이해하기 힘들다. 축구 선수에게 승리, 선수로서의 명예보다 중요한 가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나에게 중요한 가치는 상대도 중시할 거라 생각한다. 이를 조직심리학에선 비양립성 오류라고 한다. 이런 오류에 자주 빠지는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들과 갈등이 많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런 현상은 리더, 특히 성공 경험이 많은 리더에게 많이 나타난다. 이들은 자신과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은 진짜 중요한 걸 모른다'고 생각한다. 특히 자신이 중시하는 가치에 대한 확신이 크면 클수록, 상대보다 지식이나 경험이 많다고 자신하는 경우 더 심해진다. 그래서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 진 알겠는데, 그건 당신이 진짜 중요한 게 아직 뭔지 몰라서 그래" 라며 상대를 가르치려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중요시하는 가치는 제각기 다르다. 그리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아무도 판단할 수 없다. 지단처럼 가족을 중시하는 건 고상한 것, 성공 지향적인 태도는 속물적인 것도 아니다. 그저 다를 뿐이다.
 
이를 잘 반영하고 있는 개념이 똘레랑스(tolerance). 홍세화씨가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에서일본을 지배하는 사회 정신이 사무라이 정신, 영국을 지배하는 정신이 기사도 정신이라면, 프랑스는 똘레랑스다라고 이야기하며 부각이 된 개념이다.
그럼, 똘레랑스를 실천한다는 것은 뭘까? 이렇게 물어보면 어떤 이들은 나와 상대의 다름을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맞는 얘기다. 하지만 조금 부족하다. 진정한 똘레랑스는이해하는 것을 넘어서서, 상대의 모습 자체를받아들이는 것이다. 박치기를 할 수밖에 없었던 지단의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똘레랑스다.
당신이 리더라면, 부하직원들에게스스로를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가 무엇인지 물어보라. 그 다음, 그것들 중에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게 뭔지 다시 한 번 확인해 보라. 그리고 그건 그냥 받아들여라. 비록 당신이 중시하는 것과 정반대의 것을 추구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만약 그것이 조직 전체가 추구하는 핵심 가치와 다르다면? 그래서 능력이 뛰어남에도 인정받지 못해 안타깝다면? 그래도 그 가치를 바꾸려 애쓰지 마라. 부하직원은 지금 현재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도 당신도 틀린 게 아니다. 그냥, 다른 것이다.
출처 : 여긴 인(人),노(勞),총(總)입니다
글쓴이 : 피뤄팬 원글보기
메모 : 똘레랑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