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 아고라

[스크랩] 참으로 조용한 날이 없던 고려와 조선의 치욕적인 역사들

게디 2013. 8. 29. 22:26

대몽항쟁


고려에 파견한 사신이 의문의 죽음을 맞자 몽골은 이를 빌미로 고려와의 전쟁을 시작

1231년부터 1259년까지 7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입한 몽골에 맞서 충청북도 제천 지역을 포함한 전역에서 일어난 항쟁

40년간의 오랜 전쟁으로 나라가 잿더미 되어 1270년 몽골에 항복

 80년간 원나라의 내정간섭을 받음


고려 인구 : 780만명

살상자 - 130만명

포로 - 110만명

문화재 소실 및 고려의 모든 산업적 기반 파괴












임진왜란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친 왜군의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

침략 20일만에 수도 함락, 선조 피난


조선 인구 : 1100만명

병력 규모 : 조선 - 17만 5000명(명나라 지원 : 10만명) / 왜군 - 1차 22만명, 2차 14만명

살상자 : 조선군 - 70,000명, 민간인 15만명 / 명나라 - 30,000명 / 왜군 - 14만명

포로 : 조선 - 5만 5000명

문화재 약탈 : 10만여점




'금구와 김해에서 벤 코(조선인)의 숫자는 3369개 정확히 수령하였음 - 10월 1일'








병자호란

1637년 1월 30일 조선 인조가 병자호란으로 인하여 청군이 한양으로 침입해 오자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청나라에게 대항하였으나

 청의 공격을 이기지 못하고 6일만에 수도함락, 45일 후 인조 항복, 결국 청나라와 굴욕적인 강화를 맺게 된 사건


조선 인구 : 1000만명

3개월간 살상자 - 21만명, 포로 - 60만명


조선 왕 인조가 청나라 황제 홍타이지에게 항복하는 장면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1882년(고종 19) 8월 조선과 청(淸)나라가 맺은 두 나라 상인의 수륙 양면에 걸친 통상에 관한 규정

1882년 임오군란을 계기로 민씨(閔氏)정권에 대한 내정간섭을 강화한 청나라는,

 그 해 8월 23일 '조청상민무역장정'을 맺고 조선에 대한 경제침투를 강화하였다.

이밖에도 국경무역에서 홍삼을 제외한 5% 관세, 청나라 기선의 조선 파견권, 청국인의 조선연안 어업권 인정 등 청나라의 특권으로 일관된 불평등조약이었다.








강화도 조약

1876년(고종 13) 조선과 일본간에 체결된 수호조약

강화도 조약이 체결됨에 따라 조선과 일본 사이에 종래의 전통적이고 봉건적인 통문관계가 파괴되고,

 국제법적인 토대 위에서 외교관계가 성립되었다. 

이 조약은 일본의 강압 아래서 맺어진 최초의 불평등조약이라는 데 특징이 있다.







을미사변

조선 고종 32년(1895년)에 일본 자객들이 경복궁을 습격하여 명성 황후를 죽인 사건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전하고 있는 뉴욕 해럴드 기사와 그림








을사조약 (을사늑약)

1905년 일본이 대한제국을 강압하여 체결한 조약으로, 외교권 박탈과 통감부 설치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이 조약으로 대한제국은 명목상으로는 일본의 보호국이나 사실상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경술국치

일제가 대한제국에게 통치권을 일본에 양여함을 규정한 한일병합조약을 강제로 체결하고.

 이를 공포한 경술년(1910년) 8월 29일을 일컫는 말이다. 

국가적 치욕이라는 의미에서 경술국치라고 부르며, 일제는 조선의 국권을 침탈한 것에 대해 자신들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한일합방, 한일합병 등의 용어를 썼다. 국권피탈이라고도 한다.


1910년 대한제국 인구13,128,780

징용, 징병된 한국인 수 - 5백만명 / 위안부 -  43만명

살상자 - 군대 238만명, 일반 53만명, 위안부 23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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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I Love Soccer (축구동영상)
글쓴이 : 언어유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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