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이 행복한 삶의 기준이다.
누구나 한 번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라고 자문하게 된다. 사회 초년생이든 퇴직을 앞둔 임원이든 나이, 직책, 성별에 상관없이 자신이 어떤 길을 어떻게 걷고 있는지 궁금할 수도 있고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 자신의 위치와 상황에 관계없이 어떤 일이든 열정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일에 대한 몰입과 열정만이 스스로 던진 질문에 답할 수 있고, 자신의 삶을 또다시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모 대기업의 말년부장들을 상대로 리더십 강의를 했다. 수강자였던 A부장에게 전화가 왔다. 그분은 “나름 명문대를 졸업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들어와 화장실 갈 틈도 없이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니 남은 게 없다”며 허망함을 토로했다. A부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이 짠했다. A부장의 회한은 퇴직을 앞둔 많은 직장인이 ‘공중파가 끝나고 흘러나오는 애국가’처럼 되뇌는‘공통 레퍼터리’다. 과연 성공적인 직장생활의 기준은 무엇인가. 임원 혹은 최고경영자까지 올라가면 성공한 것인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퇴직이란 인생의 한 매듭을 앞두고 있을 때, 아니 앞둘 것을 상정할 때 자신의 삶을 한 줄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살아야 ‘성공한’, ‘잘 산’ 삶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공자는 아다시피 세속적 관점에서는 잘나가는 리더가 아니었다. ‘제 앞가림도 못 하는 주제에…’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생계의 어려움도 겪었다. 세상의 인정과 존경을 한 몸에 안지도 못했다. 현실참여에 뜻을 두어 13년 동안 70개국 제후에게 유세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70살이 넘은 숙량흘과 16세의 안징재 사이에서 태어난 공자의 출생은 역사가들이 표현했듯 정상적 혼인이 아닌 ‘야합(野合)’의 결과였다. 이 같은 출생의 비밀뿐인가. 공자는 아들 공리를 먼저 여의는 슬픔을 겪어야 했다. 과연 공자는 자신의 삶을 기구하고 불행하게 받아들였을까.
공자가 스스로 삶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관련 대목을 <논어>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초(楚)나라 섭현(葉縣)의 장관 심제량이 자로에게 공자에 대해 물었는데 자로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 말을 듣고)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어찌 그분(공자)의 사람됨은 분발해 먹는 것도 잊고 즐거워해 걱정거리를 잊어버리며, 늙음이 곧 다가오는 것도 알지 못한다고 할 뿐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는가?”(-술이편-)
葉公問孔子於子路 子路不對 子曰 “女奚不曰, 其爲人也, 發憤忘食, 樂以忘憂.”
(섭공문공자어자로 자로부대 자왈 여해불왈 기위인야 발분망식 낙이망우)
공자는 어떤 사람인가란 질문에 자로가 선뜻 대답하지 못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작용했을 것이다. 불시의 질문에 당황해서일 수도 있고, 질문의 의도가 파악되지 않아서든, 스승의 완벽한 인격을 제대로 표현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자로가 대답하지 못했다는 것을 전해 들은 공자는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 말해준다. “자기가 모르는 것을 탐구하기 위해 배고픈 것도 잊고 열중하며, 그렇게 하여 이해하기에 이르면 그것이 즐거워 모든 근심과 빈천에서 오는 여러 가지 괴로움을 잊고 자기가 늙어가는 사실조차 모르고 지낸다.” 이는 자로에게 대답을 가르쳐주려는 의도뿐 아니라 제자들에게 지향해야 할 삶을 일러주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부귀 이외에도 열중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것, 인생은 결과가 아니라 매진하는 과정이 더 중요함을 일깨워주고 싶어 이처럼 말했을 것이다. 이 말을 할 때 공자의 나이는 63~64세쯤이니 ‘장년의 호기’나 ‘전성기의 자아도취’로 한 말은 아니고 인생의 발효를 담아 한 것이리라.
이와 비슷하게 자신의 삶의 태도를 술회한 대목이 <논어>에는 더 등장한다.
子曰 “默而識之、學而不厭、誨人不倦、何有於我哉.”(묵묵하게 알고 배우고서 싫증 내지 않으며 남에게 깨우치기를 게을리하지 않으니 이외에 나에게 무엇이 있겠느냐)
무슨 일에 집중을 넘어 열정을 바치느라 세상의 근심도 잊어버리고 몰두하는 것이 ‘몰입’의 경지다. 한참 당구에 빠진 사람은 자려고 누워도 천장이 당구대로 보인다고 한다. 바둑도 마찬가지다. 서 있거나 누워 있거나 온통 바둑판의 형상이 눈앞에 아른거려 허공이 반상으로 보인다. 이렇게 몰입한다면, 금방 당구든 바둑이든 실력이 향상되고 고수가 될 수밖에 없다. 일도 마찬가지다. ‘즐기면서 했는가’, ‘그렇지 않은가’는 이렇게 생각의 결과물에까지 그대로 반영되게 마련이고 에너지 주파수에서 하늘과 땅 차이로 달라진다. 흥미로운 것은 ‘몰입이 여가보다는 오히려 업무 중에 일어나는 경향이 높다’는 점이다.
브랜드 네이밍업체의 S대표는 “제 클라이언트들은 저를 ‘마약’이라고 불러요. 무슨 일을 하든 저는 그 일 자체가 되거든요. 빙의하는 거죠. 그리곤 클라이언트보다 더 빙의돼 진심으로 일하지요.” 그런가 하면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은 창업 초창기 시절, 몇 날 몇 달이고 연구에 빠져 있다 보니 계절이 바뀐 줄도 모르고 여름에 겨울 외투를 입고 나간 적이 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이들뿐 아니라 많은 리더가 워크홀릭이 아닌 ‘워크러버’라고 말한다. 업무 중에 ‘발분망식’의 몰입의 경지를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는 고백이다. 미하일 칙센트미하이는 저서 <몰입의 경영>에서 “몰입은 일과 삶의 균형이 아니라 통합”이라고 말한다.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하는 일은 열정적으로 빠져들게 하면서도 깊은 만족감과 행복, 성취감을 안겨준다. 우리가 힘든 일에 집중할 때, 우리가 가진 능력을 발휘할 때,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할지를 분명히 아는 것은 인생을 살맛나게 해준다. 오히려 산술적 평균 유지를 통해 ‘행복’ 해보겠다고 평균대 위에서 비틀댈수록 목적과는 멀어지는 ‘행복의 역설’이 발생할 수 있다. 일에 매였느냐, 아니면 끌고 갔느냐 여부는 작업시간이 아니라, 몰입을 경험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그것이 워크홀릭과 워크러버를 가른다. 그것이 탈진이냐, 열정이냐를 결정한다.
경영혁신 전도사 게리 하멜은 일을 하는 태도를 크게 6단계로 구분했다. 가장 아래의 1단계는 순종(obedience), 그 위 2단계가 근면성(diligence)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직원은 나름 노력하며 자기 업무 완수를 위해 필요에 따라서 주말근무를 하고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진다. 3단계는 지식(intellect)이다. 이 사람들은 업무에 필요한 노하우를 보유하고 관련된 훈련도 받았으며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는 의지를 갖추고 있고 좋은 대학도 나왔다. 4단계는 이니셔티브(initiative·선제적인 추진력)라고 말할 수 있다. 뭘 하라고 지시를 받을 때까지 기다리는 게 아니라 문제나 기회를 보면 바로 실천에 옮기는 사람을 뜻한다. 다음의 5단계가 창의성(creativity)이다. 이 사람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찾고 기존 통념에 도전하고 여러 가지 가능성과 기회를 모색한다. 최상의 6단계는 열정이다. 이들은 제 일로 이 세상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삶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이 6단계의 열정이 몰입과 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어느 날 문득 스스로 공적, 아니 흔적이 ‘사소’하게 보인다면 자신의 몰입도를 돌아보라. 행복의 기준은 ‘성과의 사이즈’나 지위의 고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에 대한 몰입의 정도에 있다. 나는 과연 1단계 순종과 2단계 근면의 정도를 넘어 6단계의 몰입의 경지에 이르러 ‘열정의 바다’에서 헤엄쳤는가. 밥 먹는 것, 세월이 흐르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미친 일이 있었는가. 그것이 지위 고하를 넘어 나의 인생 성적표 채점 기준이 아니겠는가? 뒤늦게라도 A부장과 나누고 싶은 화두다.
-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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