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eter Gabriel : the albums with no name
- 피터 게이브리얼은 싱어-송라이터로서 형식과 내용이 어떤 식으로 결합해야 할 것인가, 어떻게하면 아티스트와 청자가 하나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 인물이고 자신이 가진 한계를 좋은 친구들의 도움을 얻어 다른 차원에서 극복한 인물이다. 50년 2월 13일생인 피터 게이브리얼은 음악적 소양이 풍부한 어머니와 전기기술자였던 아버지를 두었다. 학창시절에는 비틀즈, 오티스 레딩, 제임스 브라운 등을 좋아했으며 간디의 사상에 깊이 공감하여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초기에는 드럼을 연주하였으며 그는 지금도 종종 드럼을 친다. 그는 항상 신기술과 새로운 것들에 관심이 많았다. 밴드를 탈퇴한 뒤 그는 초과학적인 사건들에 관심을 가지고 양배추를 키우며 휴식기를 가졌다. 그의 첫 네장의 앨범들에는 타이틀이 없다. 그는 새롭지도 않은 음반들에 새로운 척하는 타이틀을 다는 것이 싫었다고 한다.77년 2월에 그는 첫번째 앨범(car)을 발표한다. 이 앨범의 프로듀서는 밥 에즈린Bob Ezrin인데 그는 이 앨범을 미국식 락큰롤 음반으로 만들고자 했다. 피터 게이브리얼도 그런 의도로 선택한 프로듀서였고. 하지만 이 앨범은 그런 쪽으로는 실패한 음반이다. 물론 상업적인 성공도 못했고. 이 앨범은 그의 여전히 극적인 성향과 밥 에즈린이 시도한 락 스타로서의 분위기와 싱어-송라이터들이 대개 그러하듯 4분 내외의 싱글곡이라는 요소가 섞인 혼란스런, 하지만 좋은!, 음반이다. 그나마 소규모 싱글히트곡을 낼 수 있어서 그의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첫 앨범은 좌절로 이어지지 않았다. 당시의 그는 우리가 지금 생각하듯 위대한 아티스트로 인정받고있지 못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78년 6월에 두번째 앨범(scratch)을 발표하였다. 전작에서 기타를 연주해주었던 그의 영웅이자 친구인 로버트 프립Robert Fripp이 프로듀싱을 맡았다. 밥 에즈린의 영향력이 강했던 전작에서 벗어나고자 로버트 프립은 프로듀서가 갖는 최소한의 역할을 하였다고 하지만 이 앨범의 사운드는 프립의 색깔이 완연하다. 좋은 음반이긴 하지만 이 음반은 아직 그의 전모를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80년 5월, 세번째 앨범(melt down)을 내는데 이는 그동안의 부진을 단번에 털어버린 걸작이었다. 음악적인 면 뿐만 아니라 상업적인 면에서까지도. 당대의 히트메이커 스티브 릴리화이트Steve Lillywhite가 프로듀싱한 본작은 그동안 조금씩 드러나던 반전/저항적인 정서가 온 앨범을 휘감고 있으며 내면의 흐름을 듣는이에게 전달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흐름을 불러일...
출처 : Daum 지식
글쓴이 : cutedrum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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