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8월, 처음으로 스포츠서울 닷컴에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시기는 저에게 그다지 좋은 때는 아니었습니다. 우리 나이로 30이었던 저는 독학으로 수능을 준비 중이었지요. 굉장히 고민스러운 시기였습니다.
원래 저는 건축을 전공했습니다. 2000년 2월 졸업 예정이었지만 건축가 분께 들은 현실과 제가 기대한 것과 많이 달라서 일단 생각할 시간을 가지려 했지요. 이에 일부러 2학점을 덜 듣고 졸업을 미룬 채 한 학기를 더 다니면서 앞으로의 진로를 고민했지요. 7년간 전혀 의심치 않던 건축가라는 직업을 놓고 고민하던 끝에 일단 IT 붐에 편승하면서 대기업의 전산회사로 갔습니다.
하지만 전산을 원래 좋아하지 않았고 재능도 별로 없어서 고민이 되었지요. 결국 2002년 10월 퇴사를 했고 한 달 정도 쉬다가 의대 편입 시험을 봤습니다. 연령이 적지 않았기에 수도권에 남고 싶었지만 두 군데에서 불합격하고 한 곳만 합격했기에 고민하다가 급히 휴학하고 나이 30에 수능으로 뛰어들었던 것이 바로 2003년입니다.
불확실했던 시기
사실 전혀 확신이 없었습니다. 학력고사 마지막 세대라 수능을 본 적도 없었지요. 그저 한 번 보고 떨어지면 그걸로 다 포기하고 내려갈 생각이었습니다.
좀 많이 힘들었습니다. 나름대로는 열심히 살았지만 방향을 잘못잡고 방황하던 저에게 답을 준 것은 어린 시절 위인전에서 보던 인물들이 아니라 몸을 혹사하고 해고의 위협에 노출되어있는 프로레슬러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생계를 위해서 이렇게 힘들게 고생한다는 것을 떠올리면서 저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래서 독학으로 공부하면서 하루 15시간씩 투자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방송 해설도 있었고 한국 투어가 오던 터라 가끔은 일을 하기도 했지만 당시 꽤나 우울했던 제 심정상 오히려 전환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지요.
모의고사 성적은 그다지 좋지 못했습니다. 가려던 치과 대학이나 한의대는 원서조차 못 낼 점수가 9월까지 나왔지요. 선생도 없고, 수능세대도 아닌데 혼자 수험책을 봐서 공부하는 일은 그다지 쉽지 않았습니다. 시험일이 가까워질수록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서 성적은 올라갔지만 분명히 쉽지 않은 도전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재, 독서실비까지 아울러서 총 100만원이 들어가지 않은 저렴했던 수험생활 중 해설 일이 두 차례 들어왔었습니다. 하나는 레슬링 게임 해설, 하나는 2위 단체의 해설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단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시험은 봐야겠기에 제의가 나쁘지 않았지만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스포스서울 닷컴의 글은 수락했습니다. 경제적인 면만 본다면 어이없는 결정이었지만 다른 분야와 같이 어울리면서 어느 정도 프로레슬링을 제대로 알리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정이었습니다.
11년만의 입시
저는 운이 좋게 한의대와 치대에 한 군데씩 합격했습니다. 솔직히 운이 좋았지요. 물론 한 문제 차이로 경희대 한의대를 못 간 것은 아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원래 가고픈 학교는 모교의 치과대학이었고, 합격한 경원대 한의대는 세 번째로 바라던 학교였으며, 기존 제 모의고사 점수로는 상상조차 못했기에 무척 감사했지요.
물론 2점짜리 한 문제도 보기 중에서 애매한 하나를 놓고 선택하는 1/2의 상황이었기에 약간만 공부를 더 했더라면 달라질 수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스포스서울 닷컴에 글을 안 쓰고 공부했더라면 맞을 수도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겠지요. 하지만 후회는 없었습니다. 어차피 한의학을 하는 입장은 동일하고 프로레슬링을 새롭게 알리는 작업은 저의 개인 사정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큰일이었기 때문입니다.
4년 가까운 시간동안...
중간에 사이트가 바뀌긴 했지만 2007년까지 4년 가까운 시간동안 적지 않은 글을 써왔습니다. 초기엔 프로레슬링에 관련한 글을 많이 썼습니다. 한 선수의 이력을 A4 10장 정도를 넘겨서 3~4부까지 올린 것은 나름대로 프로레슬링의 새로운 면을 보였다고 자평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격투기 관련 기사들이 늘어가고, 근거없이 프로레슬링을 매도하고 복싱을 폄하하는 기사들이 우후죽순 생겨나자 다소 어이없어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나름대로는 격투기를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거없이 ‘프로레슬링이나 복싱이 지는 해’라는 의미의 글에 맞서서, 숫자와 자료에 기반한 글을 기술해갔습니다. 어차피 산업인데 돈의 함수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단체의 매출이나 시청률, 그리고 방영권과의 관계에 대해서 주로 서술해갔지요. 주로 반박하는 글이 늘어갔습니다.
2006년엔 제가 아는 한 국내에서 누구보다도 먼저 PRIDE의 위기설을 주장했고 타이슨이 MMA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지었으며 UFC가 PRIDE의 위기 중 선수들을 빼내어 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크로캅의 이적으로 현실화 되었지요. 이런 작업은 저의 격투기에 대한 지식을 증명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이는 격투기 해설을 원해서가 아니라 격투기를 잘 아는 것을 증명한 후 프로레슬링과 격투기의 관계를 제대로 정립하기 위해서였지요.
저도 격투기를 꽤나 오래 봐온 편입니다. 프로레슬링 잡지를 구매하면 중간에 나오던 UFC 광고들을 보면서 90년대 중반 이들의 존재를 확인했었고 나름대로의 인맥을 통해서 계속 정보를 수집해왔습니다. 일본쪽에서 진행되는 프로레슬링과 그에 반발해서 나타난 격투기의 동향도 꾸준하게 알아갔지요. 이런 역사적인 맥락을 알았기에 그간 격투기에 대해서 말할 수 있었고, 큰 반향은 없었겠지만 나름대로는 인정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이유는 근거없는 뉴스에 대항하고 동시에 이 분야를 보는 바른 觀을 정립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제 물러납니다
이번 개편으로 아쉽게도 저는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나름대로는 꽤나 애착을 가졌지만 회사의 결정이니 저는 따를 수밖에 없지요. 물론 프로레슬링 방송에서 물러나지는 않았으며 현재는 RAW, Heat를 해설하고 XTM Arena에 패널로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방송의 특성상 일반적인 시청자분들을 상정하고 가야 하기에 깊은 이야기들은 오래 진행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 사이트를 통해서 프로레슬링과 격투기 이야기를 풀어갔고, 나름대로는 큰 의미를 두었습니다. 그걸 끝까지 하지 못한 게 아쉬울 뿐입니다.
저에게는 지금까지 타 언론매체에서 글을 고정적으로 써달라는 제의가 들어온 적이 없습니다. M잡지에 두 차례 기고한 적이 있긴 하지만 지금 이 사이트에 올리는 방향은 아니었지요. 앞으로는 어떻게 할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다른 곳에서 제의가 온다면 좋겠지만 지금까지는 없었습니다. 프로레슬링의 이론을 다른 분야와 동등한 위치로 올리면 좋겠는데 그건 제 바람일 뿐인가 봅니다.
현재 여건에서 프로레슬링 관련 웹 사이트에 글을 제공하거나, 제가 따로 그런 사이트를 만드는 것은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저는 이제 한의대 본과 2학년이고 방송 번역도 하면서 가정을 갖고 있기에 시간을 나름대로 쪼개서 쓰는 편입니다. 공부할 때는 깊게 파고들고 일할 때는 최대한의 효율을 고려하기에, 웹사이트를 만들어서 운영하는 것은 저에게는 앞으로도 한동안은 있기 어려울 것입니다. 아무래도 후일 한의원을 하게 될 상황에 보다 더 큰 준비를 해야겠지요. 그래서 방학 때도 일하는 시간과, 가사를 분담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계속 공부 중이고 TV 드라마는 ‘내이름은 김삼순’이래로 본 기억이 없습니다. 프로레슬링과 격투기만 보고 다른 일들을 주로 합니다.
다소 무료한 삶을 살고 있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의 힘으로 여러 번 이뤄왔다는 것에 나름대로 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이런 원동력은 요새는 요절한 오웬 하트나 에디 게레로를 생각하면 나옵니다. 이제 오웬 하트가 사망하던 나이와 비슷해지는 저를 보면서, 그 사람은 얼마나 죽으면서 가족에게 미안했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제 주변사람들을 위해서 열심히 살 뿐이지요. 이제 맘잡고 살려고 발악했던 에디 게레로를 생각하면, 저로서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답이 나옵니다. 제 인생은 이제는 저만의 것이 아니니까요.
살면서 너무 쉽게 기회를 얻는 사람들도 많이 봤지만 그래도 저는 노력으로 계속 길을 만들어갔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물론 프로레슬링과 격투기의 관계를 제대로 알리겠다는 저의 작업은 제가 격투기를 보는 식견이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고 몇 차례 예언을 성사시키는 선에서 마무리되고 말았습니다. 프로레슬링에서 반발해서 뛰어나간 일본 격투기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은 다소 조회수가 작을 것으로 생각했기에 시간을 두고 천천히 풀어가려했지만 기회를 잡지 못했고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굴욕적으로 들어간 UWFI의 모습도 역시 계획만 하고 시일을 봤으나 계속 미뤄지게 되었습니다.
모두 감사드립니다
그래도 프로레슬링을 타 분야와 같이 있게 해주신 스포츠서울 닷컴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칼럼진이 될 수 있도록 추천해주신, 지금은 타 언론에 있는 손기자님께도 감사드립니다. 3년 6개월 정도의 시간동안 꽤나 즐겁게 글을 써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디에선가 다시 기회가 있으면 좋겠지만 지금 이정도로도 만족은 합니다.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제 글을 좋게 봐주신 여러분께 진실로 감사드립니다. 프로레슬링 일에서는 물러나는 것이 아니므로 계속 뵐 수 있긴 할 겁니다. 그리고 몇 년 뒤에는 한의원에서 뵐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럼 더 재미있는 일들이 가득하겠지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인가 봅니다. 이제 아쉽게 물러나지만 그간 글을 통해서 이렇게 많은 분들과 알게 된 것도 정말 좋은 기회라 생각됩니다. 그럼 다들 좋은 일만 가득하십시오. 모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성민수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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