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미치겠다. 도대체 누굴 응원해야…?”
“그러게, 왜 하필 홍만이와 밴너가 붙는 거야, 그냥 레이 세포랑 홍만이가 붙으면 참 좋을 텐데….”
작년 9월 K-1 월드 그랑프리 오사카 개막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필자의 친구들이 불만을 터트리며 나눴던 대화다. 당시 한국의 최홍만 선수는 엄청난 강자와 대진이 잡혀있었고 그 상대는 바로 제롬 르 밴너(35, 프랑스)였다. 대부분의 경우라면 당연히 우리나라 선수인 최홍만을 응원하겠지만 또 그에 못지 않게 밴너도 좋으니 갈등이 생긴다는 말이다.
‘무관의 제왕’, ‘K-1의 싸움반장’, ‘하이퍼 배틀 사이보그’ 등 다양한 닉네임을 달고 다니는 밴너는 1995년 데뷔한 이래 10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흥행전선의 선두를 이탈하지 않는, 말 그대로 현 K-1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격투기가 대중속으로 깊이 파고들면서 해당 단체의 스타급 파이터들의 인기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그 중에서도 제롬 르 밴너의 인기는 모국인 프랑스는 물론이거니와 일본, 심지어는 국내에서도 그야말로 폭발적이다.
단순히 강하다고 인기가 좋지는 않을 것이다. 나날이 늘어가는 격투의 넓은 기반만큼이나 성적 좋고 우수한 파이터들은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수많은 팬들은 이 프랑스출신의 파이터에게 열광하고 끊임없는 환호를 보내는 걸까? 정말 밴너에게는 특별한 것이 있는 것일까?
◇매력 하나! 경기자체가 쇼맨십… 제왕다운 파이팅!
팬들은 냉정하다. 아무리 성적이 좋고 훌륭한 업적을 남겨도 아무에게나(?) ‘제왕’이라는 호칭을 남발하지는 않는다. 월드 그랑프리 2연패에 빛나는 ‘플라잉 잰틀맨’ 레미 본야스키나 실질적인 현 K-1의 최강자 세미 쉴트가 단적인 예로 이들에게는 제왕이라고 칭하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단 한번의 우승도 없는 이 남자에게는 스스럼없이 ‘무관의 제왕’이라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
일단 밴너 경기는 이기든 지든 화끈하다. 어떤 상대와 맞붙어도 절대 물러설 줄 모르는 우직한 이 남자는 그다지 맷집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난타전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덕분에 대부분의 경기를 명승부로 이끌어내는 재주가 있다. 하지만 그랑프리라는 경기의 특성상 우승을 하기 위해서는 체력관리, 경기운영 등 다양한 부분이 추가로 필요하다. 밴너는 지나치게 자신의 스타일을 고집하다 성적면에서 다소 불이익을 보기도 했다.
현재의 K-1이 이렇게까지 큰 대회로 성장한 이면에는 라운드가 짧은 대신 화끈한 승부가 자주 펼쳐진다는 요인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런 면에서 가장 K-1다운 파이팅을 아끼지 않는 밴너에게 팬들이 열광하는 것이다.
밴너는 다른 선수들처럼 딱히 캐릭터를 꾸미고 개성을 강조할 필요가 없는 선수이다. 링에서 보여주는 그 자체가 팬들에게는 최고의 쇼맨십이기 때문이다.
◇매력 둘! 상대를 진정으로 배려하는 가슴 따뜻한 남자
2005년 오사카 대회에서 펼쳐진 경기 중 유독 팬들의 눈길을 끄는 승부가 있었다.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스피드를 살린 움직임과 정확한 타이밍에서 나오는 한방으로 K-1헤비급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온 태국의 무에타이 전사 카오클라이 카엔노르싱. 그리고 그와 맞서는 상대는 부메랑 훅과 쇼맨십으로 유명한 ‘남아공의 흑표범’ 레이 세포였다.
체급을 무시하고 헤비급의 존재감 있는 선수들을 제압해가고 있는 카오클라이의 인기는 국내에서는 좋은 편이었지만 일본에서는 아니었다. 주최측에서는 눈에 가시와도 같은 존재로 알려져 있었다. 결국 ‘더 이상 방관하면 안되겠다’는 의도아래 세포가 이른바 처형자(?)의 역할을 맡은 것이라는 말도 들려올 정도.
약한 상대를 만나면 여지없이 희롱에 가까운 도발을 감행하는 세포는 카오클라이의 몸놀림을 잡지 못해 답답해했고, 경기자체에 대한 집중보다는 평소보다 훨씬 많은 도발을 하는데 시간을 소모했다. 일본관중들 조차 세포의 편을 들며 카오클라이에게 야유를 퍼부었고 예상과 달리 판정결과는 세포의 큰 점수차 압승이었다.
태국의 순박한 청년은 억울함과 분노로 잔뜩 상기된 표정에 금새라도 울음을 터트릴 듯 했고, 경기를 지켜보던 어네스트 후스트가 보내준 가벼운 위로의 제스처를 마지막으로 쓸쓸히 퇴장했다.
그 순간 떠오른 남자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제롬 르 밴너였다. ‘밴너였다면… 카오클라이와의 상대가 밴너였다면, 저리도 울분에 찬 표정을 짓지는 않을 텐데….’ 링 안에서는 상대를 무자비하게 부숴 버리지만 경기가 끝나면 대전자를 걱정해주고, 뜨거운 포옹을 아끼지 않는 남자. 그에게서 도발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상대가 강하든 약하든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 공격을 감행하는 파이터의 예의(?)에 충실하고 다소 흥분한 상태에서도 선전하는 상대의 제스처에 꼬박꼬박 화답을 해준다.
절친한 친구 사이로 알려진 게리 굿리지와의 경기에서는 밴너는 예상과 다르게 다른 때보다 더욱더 강하게 몰아붙이며 수 차례 다운을 빼앗은 끝에 KO로 경기를 마쳤었다. 게리는 투지를 불태웠지만 역부족이었고 그가 어렵사리 일어날 때마다 밴너의 얼굴에는 안타까운 표정이 가득했다.
결국 밴너는 사랑하는 친구를 위해서 가장 빠르게 최선을 다해 경기를 끝내버렸다. 그리고 서둘러 경기장을 퇴장하는 그의 모습은 승자의 기쁨보다는 친구를 아프게 했다는 것이 더욱 안타까운 기색이었다.
최홍만과의 경기에서도 시합 전 언론을 통해 신경전이 오갔지만 경기 자체는 정말 깔끔하게 진행되었고, 경기 후 아이들처럼 익살스런 장난도 치고 엄지손가락도 치켜들며 서로의 실력을 인정하는 등 보는 이들의 마음까지 훈훈하게 했다.
밴너의 경기에서 상대방이 억울함을 표시하는 경우는 드물다. 불파이팅을 선호하는 스타일상 애매한 판정이 나오는 빈도가 적고, 다운이나 KO가 속출하기 때문이다.
지난 4일 있었던 K-1 월드 그랑프리 요코하마 대회에서 사와야시키 준이치라는 일본의 무명파이터에게 무너져 놀라움을 안겨준 밴너. 사와야시키처럼 전략적으로 승리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왠지 찝찝함을 금할 수 없다.
‘진정한 강자는 상대를 마음으로부터 제압한다’는 말이 있다. 비록 우승과는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지만 수많은 팬들과 마음으로 통하는 남자, 저돌적인 밴너는 참으로 가진 게 많은 선수인 것 같다.
[격투기전문월간지 홀로스(www.holos.co.kr)]
김종수 객원기자
출처 : 이종격투기
글쓴이 : 세바스찬~~ 원글보기
메모 :
'스포츠(축구,야구,격투기)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Hero`s 8] 사쿠라바 카즈시 vs 유리 키세리오 (0) | 2007.03.12 |
---|---|
[스크랩] (Boxxing)에릭모랄레스VS매니파퀴아오 (0) | 2007.03.08 |
[스크랩] 다시 볼 수 있을까??? (0) | 2007.03.02 |
[스크랩] 에릭 모랄레스 vs 마르코 안토니오 바레라 (0) | 2007.02.28 |
[스크랩] 변정일 vs 라바렐라스 (0) | 2007.0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