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식품업계엔 여든 살 안팎의 창업주가 경영 일선에서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며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례가 흔하다. 1세대 오너 상당수는 신제품 개발에서부터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경영 전반을 꼼꼼하게 챙긴다. 식품회사 최고경영자(CEO)들 사이에 퍼져 있는 ‘품질이 좋으면 제품은 잘 팔리게 마련’이라는 인식이나 첨단 금융기법을 활용한 인수합병(M&A)에 대한 부정적 시각 등은 이들 창업주의 경영철학이 깊게 스며든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그런 점에서 수산·식품기업 동원그룹의 김재철 회장(79)은 식품업계의 다른 1세대 오너들과는 스타일이 많이 다르다. 그룹 경영 전반에 대해 시시콜콜하게 간섭하기보다 ‘큰 그림’만 제시하고 실무는 대부분 전문경영인이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둔다.
< ‘오너의 역할은 회사라는 무대를 배우를 맡은 임직원에게 제공해 좋은 작품이 공연되도록 연출하는 데 있다’는 게 그의 평소 지론이다. 재계에서는 이런 그의 리더십을 ‘연출자 리더십’이라고 말한다. > → 연출자 리더십
한번 쓰면 믿고 맡긴다
김 회장은 ‘한번 채용한 직원들은 오래 쓰는 게 좋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계열사 경영진을 쓸 때도 한번 임명하면 웬만하면 바꾸지 않으려고 한다.
그룹의 모태 기업인 동원산업 박부인 사장(64)이 대표 사례다. 1972년 동원산업에 입사한 박 사장은 41년간 동원산업에서만 일한 정통 ‘동원맨’이다. 2006년 대표이사가 된 이후 8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올초 물러난 김해관 전 동원F&B 사장 역시 2006년부터 올해까지 8년간 대표이사를 맡아 식품업계 장수 CEO 가운데 한 명으로 꼽혔다.
< 김 회장의 용인술은 연출자 리더십의 연장선상에 있다. ‘오랜 기간 연륜이 쌓여야 좋은 배우가 될 수 있는 것처럼 CEO도 부침을 겪고 경험이 쌓여야 제대로 된 경영을 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 → 사람을 한번 쓰면 믿고 오래 맡기는 배경
김 회장의 이 같은 인사철학은 장남 김남구 한국금융지주 부회장에게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2003년 계열분리된 한국금융지주의 주력인 한국투자증권 유상호 사장은 2007년 대표이사가 된 이후 7년째 CEO를 맡고 있다.
현장경험+이론=좋은 연출자
동원그룹 임직원은 김 회장을 상당히 어려워한다. 날고 긴다는 임직원도 김 회장의 탄탄한 내공에 혀를 내두르기 일쑤다. 그룹 관계자는 “김 회장이 한때 ‘한국 최고의 원양어선 선장’으로 평가받았을 정도로 수산업 분야의 권위자인 데다 많은 독서로 다진 지적능력 또한 만만치 않아 임직원이 넋놓고 있다가는 혼쭐이 나기 일쑤”라고 전했다.
지인들의 평가도 비슷하다. 김상하 삼양그룹 회장은 김 회장에 대해 “과욕을 부리거나 과신하지 않는 내실경영, 새로운 것에 대한 탐구정신, 남들이 가고자 하지 않는 길을 가는 개척자정신을 통해 꿈을 실현시킨 기업인”이라고 말했고, 고은 시인은 “가슴에 뜨거운 정열을 가졌고, 머리는 이성적으로 투철한 사람”이라고 평했다.
김 회장은 1958년 부산수산대 어로학과를 졸업하고 1969년 동원산업을 창업하기 전까지 참치잡이 원양어선을 탔던 ‘마도로스’ 출신이다. 한국의 첫 원양어선인 ‘지남호’ 승선자였다. 원양어선을 타던 8년 동안 참치가 많이 잡히는 ‘포인트’를 잘 집어내는 선장으로 원양어업계에서 첫손가락에 꼽혔다고 한다.
이 같은 경험 때문인지 김 회장은 “답은 현장에 있으며, 회사 구성원은 모두 현장 전문가가 돼야 한다”는 점을 유독 강조한다. 자녀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김남구 부회장은 대학 졸업 후 원양어선을 타야 했고, 차남인 김남정 동원엔터프라이즈 부사장은 창원공장에서 참치통조림 포장과 창고 야적 일 등을 경험해야 했다. 김 부사장은 글로벌 식품업계의 움직임을 최전선에서 살펴보기 위해 동원이 2008년 인수한 미국 참치캔 업체 스타키스트의 최고운영책임자(COO)를 겸직해 국내외를 오가고 있다.
김 회장의 독서열은 유명하다. 원양어선 선장 시절엔 배가 일본 시모노세키 등 항구에 닻을 내리면 책방에 가서 헌책을 한보따리씩 사와 끊임없이 읽었다. 요즘에도 한 달에 10~20권의 책을 읽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이를 잊은 새로운 도전
동원그룹은 지난해 4조1800억원이었던 매출을 2020년까지 20조원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김 회장이 가장 신경쓰고 있는 분야는 글로벌시장 공략이다. 2008년 스타키스트를, 2011년 세네갈 수산 캔회사 SNCDS를 인수한 것은 해외시장을 확대하기 위해서다.
동원그룹은 국민연금과 함께 조성한 3000억원의 매칭펀드를 활용한 또 다른 해외 M&A를 준비 중이다. 평생을 해외시장 공략에 바쳐온 ‘마도로스 김’은 나이를 잊은 채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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