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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천하장사 마돈나>의 가족관계와 여성성

게디 2006. 9. 10. 11:22

 

천하장사 마돈나를 통해 본 가족관계와 여성성

 

 

 

 

 

 

세상에 이런 촌스러운 영화제목이 있을까 싶었다.

 

 

물론 그 촌스러움은 필자의 사적 경험과 감수성에 의한 개인적 느낌이라 하겠다. '천하장사'와 '마돈나'라는 단어에 무슨 죄가 있겠냐마는 세상에는 그런 단어들이 있는 것이다. 굳이 예를 들자면 '얄개'라든가, '익살꾼'과 같은 단어들이 그러하다. 발성을 하는 순간 그 단어의 의미와는 상관없이 왠지 낯설고 어색해지며, 왠지 내가 착하고 귀여운척 하는 것만 같아서 피부의 엠보싱화 현상을 불러일으키는 단어들.

 

 

'천하장사 마돈나'라는 제목에서 뭔가 구리함을 느꼈던 것은 바로 그러한 맥락에서이다. 어찌 사람이 부끄러움도 모른 채 저런 센스 없는 제목을 갖다 붙일 수 있냐 말이지. 게다가 당 영화는 제목의 촌스러움 못지 않게 '여자가 되고 싶은 소년' 우짜구 하면서 트랜스젠더를 소재로 하는 영화라고 마빡에 떠억 하니 붙여 놓음으로써 안봐도 비디오일 것만 같은 줄거리임을 암시함과 동시에 '트랜스젠더도 사실 사람인데 모르셨죠?' 하면서 관객들 앞에 앉혀 놓고 아침 조회시간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처럼 일장 훈계를 늘어 놓을 게 뻔한 영화일 것이라는 강위력한 의심까지 생기게 했던 것이다.

 

 

그런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당 영화를 관람했더랬다. 그것도 두번이나.

 

 

일단 트랜스젠더라는 소재가 본 남녀불꽃노동당(www.namrodang.com)의 주요 관심사에 해당하는지라 검열 차원의 시사도 있었거니와 당 영화로 데뷔한 이해영, 이해준 감독은 과거 복학생스러운 유머와 정서를 물씬 풍겼던 '신라의 달밤', '품행제로' 등의 원안과 각본을 쓴 장본인답게 슬랩스틱이 아닌 고난도 유머가 구사된다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극장 문을 나서면서는 영화가 재밌냐, 재미 없냐는 차치하고서 누군가와 소주라도 한 잔 마시면서 수다 한판을 떨고 싶은 욕망을 주체할 길이 없었으니 그 수다의 소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라 하겠다.

 


 

가족에 대한 '착하지 않은(?)' 시각

 

 

당 영화를 높이 평가했던 대부분의 리뷰들이 먼저 하는 얘기가 소수자에 대한 따뜻한 시각과, 유쾌한 캐릭터들의 다양한 코믹함 등을 볼 수 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필자가 가장 먼저 수다의 소재로 삼고 싶은 것은 바로 가족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다. 그 새로운 시각이란 무엇이냐? 약간은 인위적으로 조어를 해보자면 '가족과의 과감한 결별'을 통한 '자기행복의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요약할 수 있겠다.

 

 

당 영화 주인공인 동글 동글 동구의 가정환경은 이러하다.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였으나 부상을 당해 권투를 그만두게 된 후 주변 사람들에게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와 권투하는 모습이 멋져 보여서 별 생각 없이 결혼했다가 남편의 폭력을 피해 자식들을 두고 도망나온 엄마, 그리고 아버지를 싫어라 하지만 점점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는 동생. 그리고 여자가 되어야만 하는 동구.

 

 

 

 

동구 엄마로 분했던 이상아. 꺄~

 

 

일단은 엄마부터가 우리가 알고 있는 엄마와는 사뭇 다르다. 모름지기 엄마, 어머니라 함은 그 이름만 불러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은 그러한 존재이거늘 앞서 소개한 대로 동구의 엄마는 극중에서 동구 아빠의 젊은 시절 권투를 하는 모습에 반해 두세 번 만났을 때쯤 덜컥 동구를 갖게 되어 별 생각 없이 결혼을 했다고 고백한다. 평생을 같이 해야 할지도 모를 남편을 그저 멋있어 보여서 선택하는 동구 엄마의 아무 생각 없음을 보여주는 대목일 뿐만 아니라 만난지 두 세 번만에 임신이라니. 어쩌면 동구 엄마는 젊은 시절 문란하게도(?) 원나잇 스탠드를 즐겼던 것일 수도. 게다가 아이까지 둘이나 낳았는데 가출을 한 것을 보면 소위 자식에 대한 부모의 헌신적 사랑과도 거리가 있는 무책임한 엄마였는지도 모르겠다.

 

 

우짜튼.

 

 

우짜튼 동구 엄마는 아무 생각 없이 결혼을 한 후, 별 생각 없이 애까지 둘이나 낳아 놓고서는 가출을 했다. 왜냐? 일단 남편으로부터 도망을 가야만 본인 자신이 살 수 있고, 조금이라도 나은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으니깐.

 

 

물론 이번 가출도 순간의 격정을 못이긴 철없는 행동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동구의 엄마는 설령 짧은 생각의 교과서와 같은 철없는 인물이라 할지라도 매 순간 자신의 삶과 행복을 향해 몸짓을 한다. 희생이라는 미명하에 무기력하게 자신을 포기하는 그런 캐릭터는 아닌 것이다. 희생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컨트롤 할 수 있는 사람이 타인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양보하는 것일 게다. 자신의 삶이 뭔지,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스스로도 모른 채 자신의 이익을 양보하는 삶을 산다면 그것은 희생이 아니라 언제든 그 의미가 왔다갔다 할 수 있는 정체불명의 무력함이라 해야 마땅하다.

 

 

그런 이유로 사회가 바라는 엄마의 모습을 반납하고, 가족과 결별한 채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을 확보하려는 그녀의 모습은 엄마의 탈을 쓴 그 무엇이 아닌, 지금이라도 삶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의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덧붙여 극중에서 이런 엄마가 밉냐고 동구에게 물었을 때 동구는 별 시덥잖은 얘기를 다 묻는다는 투로 "응." 이라고 대답한다. 뭐 당연히 미워야 정상일 것이다. "아무리 나를 버리고 나간 엄마라고 하더라도, 그래도 내 엄만데 어찌 엄마를 미워할 수 있겠어염." 하고 대답한다면 그건 내 앞의 엄마와 대화하는 것이 아닌 우상화된 엄마와 대화를 하는 것일 게다. 그런 면에서 이 두 모자의 대화는 정말이지 둘이서 대화를 하는듯 하다. 비록 가정을 버리고 나간 엄마이고, 비록 그런 엄마를 맘편하게 해주려 하지 않고 냅다 밉다고 하는 아들이지만 아마도 이것이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대화라 할 것이다.

 

 

 

 

 

 

 

그리고 동구.

 

 

동구가 여자가 되기 위해 막노동을 뛰고 젖꼭지에 대일밴드 붙여가며 씨름을 하는 구구절절 스토리는 생략. 권투를 시작해서 자신의 인생이 꼬였다고 믿는 아빠가 자신의 아들이 씨름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서 죽도록 두둘겨 패고 어쩌고 하다가 마침내 아들의 결승 장면을 보기 위해 대회장을 찾아 간다는 것도 패스. 이러한 설정은 사실 늘상 많이 봐와서 식상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흥미로웠던 장면 하나.

 

 

애써 찾아온 아빠는 동구에게 나도 사실은 너를 사랑하거덩? 식의 화해 요청은커녕 "나 다시는 너 안봐!" 라는 폭탄 선언을 한 후 그 선언이 스스로도 머쩍었는지 가봐야 한다며 돌아서는 동구의 손을 슬그머니 잡았을 때, 동구는 한참을 아빠를 돌아보다가 마치 우리 다시 시작해보자고 요청하는 애인을 두고 뒤돌아서 제 갈길을 가는 여인처럼 아빠에게서 자기 손을 뺀다. 가족영화, 감동영화 류에서 많이 나오는 가족끼리의 막판 화합과 대통합의 퍼포먼스가 당 영화에는 없는 것이다. 마지막 에필로그 동구의 댄스 무대에서 아버지가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일 것이다.

 

 

개인의 행복이 중요한가 아니면 가족간의 평화가 중요할까?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가지 모두 소중하다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그 둘 중에 어쩔 수 없이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그것은 너무도 당연히 개인의 행복이어야 할 것이다. 가족은 개인으로 구성되는 거니깐.

 

 

가족은 소중하다. 무지하게 소중하다. 하지만 그 소중함이 나 자신의 행복창달과 대치될 때 우리는 갈등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무슨 돈과 명예의 문제로 고민하는 경우 영화에서는 대부분 가족이 승리하며 관객들로 하여금 흐믓함을 자아낸다. 그러나 당 영화 속 동구처럼 자신의 성적 정체성이 그 핵심 논점이라면? 당연히 더 어렵다. 왠지 영화들에서처럼 가족과 사회와 국가와의 원만한 타협이 있어야 그게 진짜 해결인 것 같아 더욱 어렵다.

 

 

영화 속 동구는 이렇게 얘기한다.

 

 

"난 뭐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살고 싶은 거야!"

 

 

쫌 닭살 스럽긴 하지만, 우짜튼 살려고 그런 거란다. 그렇다면 가족과의 결별도 불사해야지 뭐. 용서와 화해는 나중에 하덩가 말덩가. 서로 이해 못하고 수치스럽다 생각하고 또 그런 가족들이 두려워진다면 당연히 결별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건전하다.

 

 

당 영화는 그런 합리적이고 건전한 가족의 모습을 담기 위해 노력한다.

 


 

여성성이란 과연 무엇일까?

 

 

 

 

극중 동구가 성전환비 500만원을 마련하기 위해 씨름을 하는 것이니만큼 감독은 관객들에게 동구가 성전환을 하려고 마음먹을 수밖에 없었던 뭔가 결정적 여성성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솔직히 필자는 여성성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 이유를 인류의 역사가 오직 남성들에 의해서만 쓰여졌기 때문에 지구상에는 남성적 언어와 남성적 사고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페미니스트들도 있으나 이 분석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도 힘들다. 그렇다면 아무튼지간에 남성성과는 확연히 구분지을 수 있는 여성성이라는 게 존재하기는 한다는 것인데 과연 남성과 구분지을 수 있는 여성성이란 무엇일까? 남성은 격렬하고, 동적이며, 상호신뢰를 중요시 하는 반면, 여성은 부드럽고 정적이며, 상호 친밀감을 중요시 한다고들 하는데 이는 마치 바다가 파랗다고 규정하는 것만큼이나 단순하다. 바다의 색은 하늘의 빛에 따라 달라질 뿐이니깐.

 

 

육체의 구조가 다른 관계로 생리적 역할이 다르고, 물리적 힘의 차이가 있다보니 힘의 논리에 의한 권력관계가 발생했으며, 발생된 권력관계를 고착화해가는 과정에서 예측 가능하고 통제 가능한 성향이 인위적으로 제정되었을 뿐이다. 마치 길이를 측정하는 cm 단위처럼 인간을 인식 가능한 무언가로 대상화시키기 위한 단위 중 하나가 남성성, 여성성일 것이다.

 

 

이러한 개인적 관점으로 봤을 때 당 영화는 사려 깊다.

 

 

관객의 눈을 속이기 위해 예쁘고 날씬한 트랜스젠더가 나오지도 않고, 소위 '어머머'로 통하는 억지스러운 '여성적' 말투나 몸짓도 없다. 게다가 너네가 트랜스 젠더의 고통을 알기나 하느냐는 식의 대화 상대방의 무지를 전제로 한 기만적 비분강개도 없다. 여성이 되고픈 동구가 일반 남성 이상의 근력까지 갖고 있다보니 물리적 열등으로 빚어질 수 있는 신파적 설정도 없고, 관객에게 동정심을 짜내기 위해 만들어지곤 하는 SF적 심성의 나쁜 놈도 등장하지 않는다. 오직 코믹함을 잃지 않을 뿐이다.

 

 

어쩌면 감독은 관객에게 남성성은 뭐고, 여성성은 뭘까 하는 골치 아픈 질문거리를 던져 주고서는 사실 그 구분이 뭐가 중요하냐. 걍 서로 웃고 즐거울 수 있다면 그러면 된거지. 라고 말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게 사실이라면, 지금까지 떠든 나만 바보되는 거고.

 

 

아무튼 필자의 수다는 여기까지. 이제는 독자제위의 차례다. 독자들께서는 이 영화를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 본 기사는 남로당(www.namrodang.com)에서 제공합니다. 퍼가실 때는 출처를 명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남로당 사무총장 너부리(newtoilet@xddanz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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