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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제1회 국제 영화제, 그 추억 속으로.

게디 2006. 10. 12. 07:51

무덥고 습한 기운이 가시는 가을. 그즈음이 되면 저는 괜시리 온몸이 가려워집니다. '그녀'가 다가왔음을 내 몸이 느끼기 때문이지요..

 

그녀는 부산국제영화제 때문입니다. 그녀는 올해도 어김없이 가을바람, 바닷바람을 타고 산너머 남촌에서 솔솔 날아오고 있습니다.

 

올해면 그녀를 만난지 꼭 열해가 됩니다. 횟수로는 11번째가 되겠군요. 대견스럽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합니다.

올해는 특히 영화전문지 '버라이어티'가 데일리를 낸다고요. 야 참 많이 컸습니다.

 

10년 사이 부산의 영문표기가 PUSAN에서 BUSAN 으로 변했지만,

PIFF는 처음처럼 PIFF입니다.  BIFF는 동생 방콕영화제라죠.

 

PIFF가 뭇 사람들의 의문속에 태어나던 그날, 저도 PIFF와 함께 있었습니다.

자원봉사자로서 말이죠.

 

당시에 통역을 신청해 '한국영화사료전시회'를 맡았습니다.

전시회는 수영만 요트경기장 내에서 열렸죠. 덕분에 저는 오프닝 영화였던 비밀과 거짓말을

2층 테라스에서 보는 행운을 누렸답니다.

 

PIFF탄생 열해째를 맞아 오래전 묵혀두었던 자료들을 꺼냈습니다.

먼지를 털어낸 자료들은 어느새 사료가 되고 있더군요.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 그 추억의 바다로 빠져보실까요?

먼저 자원봉사자 관련 사료들입니다.

 

 

<자원봉사자증입니다. 이것 한장만 있으면 어디든지 다 돌아다닐 수 있었죠.

정말로 만능 ID카드였습니다>

 

 

<제1회 국제영화제 뱃지입니다. 단순하면서도 깔끔하죠?>

 

<자원봉사자들에게 배포됐던 T셔츠입니다. 장롱속 깊이 너어뒀다가 꺼냈더니 꾸질꾸질하네요..그래도 추억이 묻은 옷이라 나프탈렌 꽉꽉채워 간직해뒀지요>

 

<박봉곤 가출사건 티켓. 1인 3000원이었군요. 야외상영작입니다>

 

 

<자원봉사자들에게 주던 참가증서. 국제영화제의 성공적 개최에 크게 기여했다...고 돼 있네요..*^^*>

 

<대형 포스터입니다. 마지막날 하도 아쉬워서 자원봉사자들끼리 이런저런 메시지를 남겼죠.

내년에 꼭 다시봅시다..수고했어요...너무멋있어요...어, 저기 작은 글씨로 '계 꼭 나와요'라는 말도 있네요. 계를 만들긴 했는데 오래지 않아 깨졌습니다.>

 

 

그럼 여기서 당시 나부꼈던 각종 포스터를 한번 살펴볼까요?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 메인 포스터입니다. 눈동자가 대단히 인상적이었어요>

 

<와이드 앵글부문의 포스터. 다큐멘터리, 단편영화, 에니메이션이 주로 있었습니다>

 

 

 

 

<한국독립영화 포스터입니다. 이게 와이드앵글처럼 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것인지는

자세히 모르겠네요. 기억이 가물가물..아무튼 영화제 자료와 함께 있으니 유사자료인 것

만은 틀림없을 듯...>

 

제1회 국제영화제의 각종 종이자료들을 찾아왔습니다. 상영책자, 영화설명서까지 몇권이 있더군요

 

제가 근무했던 한국영화사료전시회의 팜플렛입니다. 1900년대부터 90년까지의 한국영화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습니다. 맨 오른쪽 사진은 별들의 고향이군요.>

<한국영화사료전시회 팜플렛. 포스터를 최대한 살렸습니다>

 

<제1회 국제영화제 상영안내책자입니다. 맨 오른쪽에 협찬사였던 씨네21이 씌여있군요>

 

<상영안내책자를 넘겨보니 목차들이 나옵니다. 이때만해도 상영안내책자를 보는게 영 어색했었는데요..>

 

<영화안내책자입니다. 상영작이었던 비밀과 거짓말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나와있네요. 수영만 요트경기장에서 대형스크린을 통해 본 이영화는 잔잔하지만,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10년전 국제영화제 책자와 팜플렛에는 어떤 광고들이 있었을까요? 책자를 넘겨보다 보니 재밌는 내용들이 많네요. 함께 보실까요?

 

<첫영화제 당시 스폰서가 많이 없어 조직위가 아주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가장 스폰서 중 하나가 대우그룹이었죠. 지금은 세계경영을 외치던 대우의 몰락이 새삼 아쉽습니다. 이 광고는 영화안내책자 맨 뒤편에 전면으로 나왔네요>

 

 

<웬 백지광고. 영화안내책자안에는 '마지못해' 혹은 '기부하듯' 실린 광고들이 몇장 눈에 보입니다. 단순히 'congratulations'로 갈음했군요. 지금과는 천양지차네요>

 

<지금은 없어진 상업은행광고. 10년 국제영화제 역사에는 사라진 기업들도 종종보입니다. 당시 상업은행은 부산시금고 은행이었습니다. 그래서 광고를 했을런지도..>

 

 

 <이 광고부터는 씨네21에서 냈던 데일리의 뒷면 광고입니다. 부산국제영화제 직접 광고는 아니었지요. 대동건설의 광고네요. 당시에는 하희라씨가 모델이었습니다. 새삼스럽다...>

 

 

 

<현대백화점 부산점의 광고입니다. 아마 본사에서는 광고를 안했었나봐요. 당시에는 부산지역업체들의 광고 하나 따기도 힘들었나 봅니다>

 

 

<현대백화점이 하면 롯데백화점도 해야죠. 역시나 부산점광고입니다. 본사 차원의 지원은 없었군요..>

 

 

<어..낮익은 인물이 보이군요. 핸드폰의 신화, 애니콜도 나온지 얼마안됐을 때였지요..>

 

부산국제영화제가 이만큼 크는데는 씨네 21의 역할이 컸습니다. 당시 씨네21은 국제영화제를 어떻게 보도했을까요. 자료 꺼냅니다.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씨네21의 데일리. 9일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발간했습니다. 9일내내 출근하다시피했던 저도 데일리모으는게 일이었죠. 간신히 다 모았습니다. 라스트맨 스탠딩이 데일리 1일차였군요.*^^*>

 

<데일리 2일차의 표지모델은 크래쉬. 당시 상영찬반을 놓고 공안당국과 영화제의 대립이 만만찮았던 영화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쓴웃음만 나지만, 당시에는 왜 그리도 심각했던지...>

 

 

<데일리 3일차. 상해난이라는 영화가 있었던가요? 지금은 이땅에 없는 장국영 얼굴도 보이네요.  유덕화 틈새 끼여있는 정우성 얼굴이 눈길을 끕니다. 당시만 해도 홍콩영화의 힘은 여전했었죠.>

 

4일차 데일리부터는 좌악 깔아놓습니다. 한번 훑어보시죠..

 

 

 

 

 

 

씨네21의 사랑이 각별했던 만큼 지면할애도 많이했었지요. 씨네21은 국제영화제의 성공도우미였지만, 국제영화제가 있었기에 씨네의 존재의미도 그만큼 더생겼는지 모를 일입니다

 

 

 

<국제영화제 직후의 씨네21. 국제영화제의 이모저모를 담았었네요. 남포동에 꽉찬 사람들, 크래쉬로 인해 '영화검열반대'싸인을 하던 모습, 안성기씨의 활짝 웃는 모습, 관객과 감독이 쏘주 파티를 열던 모습들이 오롯이 담겨있군요>

 

 

<씨네는 국제영화제를 '관객과 감독의 행복'이라고 정의했습니다. 하나더 붙여주시지. 자원봉사들도 행복했다고......

 

출처 : 영화
글쓴이 : 뺑사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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