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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아이의 잘못된 행동과 습관 , 큰소리와 강제 아닌 '놀이'로 바꿀 수 있다!

게디 2006. 11. 4. 00:31

부모 입장에서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이나 습관 때문에 고민이세요? 그래서 아이들과 신경전 벌일 때가 많으세요? 어떻게 하면 아이의 행동이나 습관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 걱정이세요? 그렇다면 큰소리나 강요가 아닌 아이들도 신나고 부모도 유쾌해지는 놀이를 통한 방법을 한 번 권해봅니다.

 

아이의 잘못된 행동과 습관 바로 잡기, 강요보다는 조금만 방식을 달리하자!

 

‘목욕’이 아닌 ‘물놀이’를 동생과 신나게 하고 있는 딸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예전 같으면 목욕을 하기 전부터 울기 시작한 울음이 목욕 후에도 그치지 않은 아이였고 보면, 물놀이를 하고 난 후 저렇게 동생하고 신나게 노는 것을 보면서 ‘아주 작은 이치를 깨닫지 못해 그동안 아이를 울렸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아이들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6살인 세린이는 어릴 적부터 목욕하자고 그러면, 특히 머리를 감자고 하면 유독 싫어했습니다. 무조건 울기부터 했고, 심하면 하기 싫다고 떼를 쓰기도 했지요. 하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가 운다고 해서 하루 종일 뛰어노느라 땀범벅이가 된 아이를 그대로 재울 수는 없지 않습니까?


물론 처음에는 대화를 통해 해결하려고 했지만, 점점 졸려하는 딸의 모습에서 자야 할 시간이 다 됐다는 이유를 들어 결국 인내심을 잃은 저나 아내는 씻겨야 한다는 결론에만 집착해 혼을 내면서 그냥 씻겼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면 참 마음이 편하지 않았죠. 어찌나 울었던지 잠을 자고 있으면서도 ‘훌쩍 훌쩍’ 울먹이는 소리와 들썩이는 어깨를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그렇게 아플 수가 없었습니다.


 이 같은 아이와의 힘 겨루기는 비단 목욕 뿐 아니라  일상에서 정말이지 많았습니다. 아이와 부딪힐 때마다 큰 소리도 치고, 벌을 주기도 하고, 짜증을 내기도 하고, 아무튼 아이나 부모 모두 감정이 상하는 쪽으로 결론이 나곤 했지요. 때로는 큰소리를 내는 것이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분명히 부모 입장에서는 잘못된 행동이나 습관이니 그대로 내버려 두면 모든 행동에서 자기 고집대로만 하려는 나쁜 버릇이 든다는 이유로 저와 아내는 부모라는 우월적 지위와 어른이라는 물리적 힘을 동원해 아이를 제압하곤 했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아이에게 하는 마지막 말은 “엄마 아빠 말 좀 들어!”였습니다.

 

'공부해라, 공부해라!' 하면 더 하기 싫은 것이 공부입니다. 아마 부모님들 어릴 적에 다 경험해 보지 않으셨나요? 공부도 놀이가 되면 아이들은 재미있어 합니다. 물론 자녀의 연령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제 말은 무조건 부모의 입장에서 '강요'가 아닌 자녀의 입장에서 보면 다른 '현명한 방법'도 있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아무리 어린 아이라 해도, 그리고 내 자식이라 해도,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내 원칙에 따라 강제력을 동원하기 보다는 존중하는 마음과 대화를 통해 합의점을 찾고, 또한 그 대화의 과정에서 아이가 해야 할 일에 대한 당위성에 대한 공유, 그리고 그 공유를 통한 이해와 설득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단 하루도 간과한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내 철학의 깊이가 부족해서인지 실제 아이와 부딪히면서는 종종 그 같은 가치관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식탁에서 얌전히 밥 먹기, 엄마가 준 밥 다 먹기, 김치ㆍ당근ㆍ시금치ㆍ멸치 등을 포함한 반찬 골고루 먹기, 불량식품 안 먹기, 우유 마시기, 양치 잘 하기, 외출할 때 입으라는 옷 입기, 신으라는 신발 신기, 어른한테 인사 잘 하기, 어른이 용돈이나 선물주면 인사하기, 질서 잘 지키기, 텔레비전 조금만 보기, 일찍 잠자기, 친구한테 양보하기, 동생한테 양보하기, 거짓말 안 하기, 정리정돈 잘 하기, 공부하기 등 아내나 제가 아이에게 요구하는 것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이 많은 것들은 ‘자식을 위해서’ 라는, 자식을 위한 부모의 역할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습니다. 아이가 튼튼하고, 예의바르고, 착하고, 바른 아이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당연한 마음이라 할 수 있겠죠.


“그렇게도 안 바뀌더니 놀이방식으로 바꾸니 아이가 변했어요!”


그렇게 하루가 멀다 하고 아이와 티격태격 씨름하던  어느 날, 역시 머리를 감기 싫어하던 날이었습니다. 무심코 던진 말이 “우리 물놀이 할까?”였습니다. 하기 싫어 짜증을 부리던 녀석이 순간 아빠를 바라보더니 활짝 웃으며 “물놀이? 좋아!” 하더군요. 그렇게도 목욕이나 머리 감기를 싫어하던 아이가 물놀이 하자는 말에는 아무런 거부감 없이 즐겁게 목욕을 하다니... 함께 목욕하면서 약간의 장난을 함께 해 준 것뿐인 데, 머리도 잘 감고 아무런 거부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머리 감고 목욕하는 것은 똑 같은 데, '목욕하자, 머리감자'라는 말 대신 '물놀이 하자'라는 말로, 그리고 일방적으로 머리 감기고 목욕 시키는 것이 아니라 놀이 방식을 빌리니 아이는 아무런 거부감 없이 변했습니다. 물론 다른 행동과 습관도 같은 이치였습니다.


아빠의 말 한 마디에 아이는 변했습니다. 그 날만 그랬던 것일까? 저는 며칠 후에 다시 한번 아이한테 ‘물놀이 할까?’하고 물어봤습니다. 아이는 “그래그래!” 하면서 오히려 자기가 먼저 옷을 벗고는 아빠 보고 빨리 들어오라고 합니다. 욕조 안에서 몇 가지 물건을 가지고 노는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혼자 골몰히 생각에 잠겼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안 하려고 하더만, 신기하네! 뭐지, 저 아이의 행동 변화를 가져온 이유가?’

 

한참 후에 제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아, 그렇구나! 아이들은 작은 것에서도 행동 변화를 가져올 수 있구나! 지금까지 어른들 생각에서 나오는 단어를 선택했구나. 그래서 이 아이가 그 단어의 의미를 엄마 아빠가 강제로 시키는 것이라 생각했구나. 아이들은 같은 말이라도 아이의 눈높이에서, 그리고 아이가 흥미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단어에 자신의 행동을 일치시키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놀이에서 얻은 작은 깨달음은 다른 것에도 그대로 적중했습니다. 그동안 일상에서 아이와 부딪쳤던 많은 일들을 아이의 눈높이에 맞는 단어로 바꾸고, 또한 아이에게만 일방적으로 시키는 것이 아니라 아빠와 엄마가 아이와 함께 놀이형식을 빌어 함께 해 봤습니다.

 

양치하는 것을 ‘세균맨 잡기 놀이’로, 반찬 골고루 먹는 것은 ‘젓가락 놀이’로 정리정돈 잘 하기는 ‘누가 누가 정리 잘 하나?’로, 밥 잘 먹기는 ‘밥 먹고 팔씨름 놀이’로, 인사하기는 ‘배꼽놀이’로, 양보하기는 ‘주고받기 놀이'로 거짓말 안하기나 잘못된 행동 바로잡기는 ‘얼음 땡!놀이'로 바꿨습니다.

 

주고받기 놀이는 소꼽놀이 등을 활용해 서로 일정의 물건을 가진 다음 서로가 필요할 때 나눠주는 것을 반복함으로써 양보하는 마음을 길러주고, 얼음 땡 놀이는 잘못된 행동을 할 경우 큰 소리내기 보다는 '얼음!'하고 외쳐 그 행동을 중단하게 한 다음 조근조근 이야기를 한 후 '땡!' 하고는 다시 아이와  놀아주는 것입니다. 이 같은 놀이형식을 통해 일상에서의 행동들을 큰 소리치지 않고도 바로잡을 수 있었습니다.


세균맨 놀이는 양치하면서 ‘어어, 저기 세균맨이 숨어 있네’ ‘세균맨이 막 도망간다. 잡아라!’라 하면서 아이를 즐겁게 하면서 양치를 합니다. 젓가락 놀이는 평소 잘 안 먹는 반찬을 놓고 약간의 경쟁심을 유도해 ‘누가 먼저 집나? 음~ 맛있다!’하면서 역시 놀이의 재미를 가미시켰습니다. 효과가 있었냐고요? 물론입니다. 자기가 이 반찬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채 맛있게 먹습니다. 한동안은 이 같은 방식을 계속해야 한다는 번거로움도 있지만, 처음부터 거부하던 음식을 억지로 먹게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접하게 함으로써 편식에 대한 우려를 없앨 수 있었습니다.

 

"이건 왜 안 먹어? 이게 얼마나 몸에 좋은 데. 얼른 먹어!" 이게 예전의 제 말이었습니다. 지금 김치부침개를 만드는 중인데요, 김치를 싫어한다면 김치를 이용한 다른 요리를 해 준다던가, 아니면 그 요리를 만드는 데 아이를 참여시키는 겁니다. 재미를 느낀 아이는 김치가 맛있다며 잘 먹습니다. 그리고 편식하는 음식을 억지로 먹으라 하지 말고 놀이형식을 한 번 빌려보세요.

 

역시 장난감이나 옷 등을 정리하는 습관도 부모 입장에서는 길러주고 싶은 습관일텐데요, 역시 강요한다고 해서 되는 일은 아니라 봅니다. 아이와 함께 정리하는 시간을 정해두고 즐겁게 대화하면서 마치 놀듯이 정리를 하고, 그 대신 다 정리하고 나서는 정리 후의 깨끗한 환경을 보여주고 잘했다는 칭찬을 한 번 해 주세요. 


‘밥 먹고 팔씨름 놀이’는 밥을 다 먹고 난 후 ‘얼마나 키가 컸나? 얼마나 힘이 세졌을까?’하면서 밥을 먹고 난 후 팔씨름을 하다 아빠가 져 주면서 ‘우와! 힘이 엄청 세졌네!’하면 딸아이는 ‘나 힘세지!’하면서 우쭐댑니다. 다음 식사 때에도 역시 아이는 반찬 골고루 먹으면서 밥을 다 먹고는 “아빠, 빨리 와. 나랑 또 팔씨름 해 보자? 내가 이길 걸? 그치 엄마?”하면서 저를 재촉합니다. 엄마는 “그럼, 아빠는 골고루 안 드셔서 세린이 못 이길 거야”하면서 아이를 응원해 주고, 저는 은근슬쩍 져 줍니다.

 

 만약 아이가 잘 안 먹는 날에는 일부러 팔씨름에 이기면서 “거봐, 골고루 안 먹고 밥 잘 안먹으니까 힘이 없잖아”하면서 골고루 먹는 것에 대한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기도 합니다. 덧붙여 밥을 다 먹고 난 후 키를 재보는 놀이도 아이는 흥미를 느낍니다. "골고루 잘 먹으니까 이만큼 컸네"하면 아이는 우쭐하면서 기분 좋아합니다.


물론 매일 매일 그렇게 하면서 먹기 싫다는 거 억지로 먹이지는 않습니다. 뭐, 어른도 밥 먹기 싫을 때가 있고 먹기 싫은 반찬이 있으니까요. 단지  먹는 것을 강요하지 않고 이렇게 다른 방식으로 한다는 겁니다.

 

저는 이 같은 다양한 함께하는 놀이를 통해 달라진, 달라지는 아이를 보면서 그동안 ‘부모’라는 이름으로, ‘잘 키운다’는 명분 아래, 그 어떤 것보다도 우위에 있어 누구나 존중받아야 할 인권이라는 것이 우리 딸아이에게도 엄연히 있다는 것을 감정이 앞서면 잊어버렸던 것을 많이 반성하고 또 반성했습니다.


잠시 잊었습니다. 일상에서 부모님들의 많은 행위가 아이가 튼튼하고, 예의바르고, 착하고, 바른 아이로 키우기 위한 엄마와 아빠의 노력이지만, 부족했던 저를 놓고 볼 때 그것은 좀 더 현명한 방법을 찾지 못한 부모의 변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책이나 인터넷을 보면 다양한 더 좋고 현명한 길이 있겠고, 어떤 분들은 엄할 때는 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겠지만, 저는 아이의 바람직한 행동을 위해 큰 소리와 강요만 하지 말고,  아이와 함께 하는 놀이를 통한 방법을 한 번 권하고 싶습니다.


저는 지금 제 사전에서 “엄마 아빠 말 좀 들어!”라는 말을 지웠답니다^^ 짧은 시간에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100% 다 되지도 않지만, 저는 이러한 방법이 보다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출처 : 사는 이야기
글쓴이 : 장희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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