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을 안 하면 모른다는 것은 설명을 해도 모른다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1Q84>라는 책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알쏭달쏭한
표현입니다. 퍼뜩 와 닿지 않기 때문에 이해를 위해서는 다소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스토리텔링 형식의 문학적인 글에서는 선문답같은 표현이 자주 등장합니다. 하지만 논리력을 통해 정보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실용적 글쓰기에서는 응당 피해야 할 표현입니다. 직장인과 이공계가 작성하는 실용적인 글은 무엇보다 이해하기 쉬워야 합니다. 독자의 입장에서 최대한 알기 쉽게 작성돼야 합니다.
왜냐하면 좋은 글의 바탕에는 쉽게 읽을 수 있고, 이해하기 쉬워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이 되려면 알기 쉽게 글을 써야 합니다. 독자에게 쉽게 다가서는 글쓰기는 '알기 쉬운 내용'을 최우선으로 해야 합니다. 이해하기 쉬운 주제인지, 주장을 구체화하는 얘깃거리 즉 소재를 알기 쉬운 것으로 선정했는지, 두 개의 공을 동시에 던지면 받기가 어려운 것처럼 하나의 단락에는 하나의 주제가 담겨 있는지, 한 문장에는 한 개의 생각을 이입했는지 반드시 따져 보아야 합니다. 알기 쉬운
글쓰기는 곧 독자의 눈높이에 내용을 맞추는 행위입니다.
독자의 눈높이에 맞추는 글쓰기는 '간결한 문장'을 사용할 때 이루어집니다. 문장을 단문으로 간결하고 짧게 끊어 쓰면 독자의 이해력을 높일 수 있습니다. 문장이 복잡하거나 장황하면 독자들은 읽는 데 숨넘어가고, 읽고 나서도 의미를 잘 모르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이 알고 있더라도 주저리주저리 쓰지 말아야 합니다. 핵심과 정곡이면 만사 오케이. 수년 전, 현대그룹에서 회자된 얘기는 그래서 중요합니다. 정주영 회장의 만수(萬數)를 이긴 것은 9천9백수가 아니라 이명박 사장의 간결한 단수였다는 사실!
간결이란 의미에는 압축, 절제, 함축의 뜻이 있습니다. 영국의 위대한 정치가인 윈스턴 처칠이 어느 대학 졸업식에서 한 1분 연설, "결코,
결코,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라는 멘트는 단연 간결함의 백미입니다. 화려한 수사와 장황한 내용보다는 간결한 한마디, 진공포장처럼 군더더기가 쪽 빠져 나간 글, 이런 것에 사람들은 필이 팍 꽂히게 마련입니다. 긴 말일수록 지루해서 잘 듣지 않게 되는 것처럼, 문장 역시 장황하게 길면 그 글은 죽어 버리게 돼 무슨 뜻인지 알 수 없게 됩니다.
세르반테스는 "좋은 말(言)이 간결하기까지 하다면 그 효과는 배가된다"라고 했습니다.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글은 짧을수록 좋고, 압축할수록 훌륭해 집니다. 짧고 압축된 글을 쓰려면 평소에 신문을 꾸준히 읽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스트레이트 기사, 칼럼, 논설 따위의 헤드라인을 유심히 보고 흉내내 버릇하면 많은 도움이 됩니다. 헤드라인은 글의 내용을 몇 번씩 농축하고 쥐어 짜낸 진액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필자에게는 신문 헤드라인과 관련해서 뚜렷한 기억이 하나 있습니다. 오래전에, 비가 내리는 가운데 거행된 대학 졸업식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다음 날 그 대학교 신문의 1면 헤드라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축하의 꽃비 속, 꿈의 나래 활짝.' 필자 역시 대학에서 학보사 기자 노릇을 했지만 이만큼 멋진 머리기사를 쓰진 못했습니다. 처칠의 1분 연설에 견줄 만하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구질구질 내리는 비를 축하와 희망으로 승화시키고, 졸업생들의 꿈을 미래의 힘찬 날개짓으로 함축하여 짧은 문장으로 간결하게 녹여 낸 머리기사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필자에게는 그 졸업식이 절제되고, 함축되고, 간결한 글쓰기가 왜 중요한지를 깨닫게 해 준 분명한 계기였습니다.
간결화의 바람은 기업에서도 세차게 불고 있습니다. 보고서 1매 BEST 열풍. 삼성은 90년대 범그룹적으로 실시한 '보고 SOS 캠페인'을 통해 보고서 효율화를 줄곧 실천해 왔습니다. LG 역시 '단순할수록 알기 쉽다'라는 취지 아래 맥킨지 방식의 문서 쓰기를 도입했고, 포스코도
보고서 다이어트에 한층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모든 기업들이 경쟁이 치열한 환경 속에서는 쉽고 간결한 글쓰기가 생존의 길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알기 쉬운 내용, 간결한 문장, 함축된 의미와 함께 이해하기 쉬운 글쓰기를 위해 빠뜨리면 안 되는 한가지가 또 있습니다. 바로 '쉬운 용어'입니다. 신입사원 시절, 저를 당황스럽게 만든 것은 직장 용어였습니다. '탕비실(간이조리실)'을 몰라서 선배의 커피 심부름에 허둥대야
했던 일, '날개미(찾아보기 표)'의 뜻을 알아 차리지 못해서 상사에게 혼났던 기억, '갱의실(탈의실)'이 뭣하는 곳인지 모르고 노크도 없이
문을 벌컥 여는 바람에 속옷 차림의 여사원들이 기겁했던 죄송스런 사건. 모두 생소하고 어려운 용어 탓입니다.
요즘 기업들의 노력으로 어려운 용어가 많이 개선되고 있지만 의학·법률·IT·금융분야의 용어, 보험 약관 따위는 여전히 암호문 수준입니다.
직장인과 이공계처럼 실용적인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은 외계어 같은 용어를 쉽게 풀어 써야 합니다. 이를 위해 글쓴이가 중학생의 입장이
돼 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입니다. 중학생의 시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용어는 알기 쉽게 모두 바꾸어야 합니다. 예컨대 일본식 단어를 피하고, 한자어를 자제하고, 전문 용어를 누구나 알 수 있는 표현으로 바꾸면 글의 내용은 한층 더 쉬워지게 마련입니다. 작가든, 의사든, 판사든, 보험설계사든 대중에게는 '알기 쉬움'으로 접근해야 승산이 있습니다.
좋은 글은 서로 통하여 막히는 데가 없고, 공감하여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입니다. 그런 글을 쓰려면 '쉽고 간단하고 짧게' 써야 합니다. '누구나 알 수 있도록 쉽게 쓰는 것 '과 '간결하고 간단한 표현을 구사하는 것'은 '알기 쉬운 글쓰기'의 핵심 포인트입니다. 이제 직장인과 이공계 앞에는 두 가지의 표현 방식이 놓여 있습니다. 어려운 내용을 쉽게 표현하는 것과 쉬운 내용을 어렵게 표현하는 것. 좋은 글솜씨를 원한다면 과연 어느 쪽에 줄대는 것이 옳을까요? 부디 현명한 선택으로 '불행한 줄서기'만은 꼭 피하기를 바랍니다.
- <영어보다 글쓰기> 저자, 만사서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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