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때 친한 친구와 둘이서 14만원을 가지고 서울을 출발해서 동해, 남해, 서해를 돌아 다시 서울로 오는 여행계획을 세워 떠난적이 있었다. 일주일동안 동해를 돌고난 후 둘은 거의 망신창이가 되었다. 부산에 도착한 우리 둘은 야심차게 계획을 수정하기로 했다. 그것은 남해, 서해를 도는 것을 포기하고 대신 제주도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었다. 남은 돈을 털어보니 겨우 집까지 돌아갈 차비는 될 정도였다. (사실 14만원이라는 돈은 알고보니 교통비조차 되지 않은 금액이었다.) 학생이었기 때문에 배나 비행기나 별차이가 없어서 우린 비행기를 선택하기로 했다. 제주도에 도착한 우리는 거의 몸살이 나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피로를 풀기 위해서 우리가 취할 수 잇는 것은 설탕물 한컵 진하게 먹는 것 뿐이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다음날 한라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라산은 일반인들일 경우 오르는 시간만해도 4시간30분이나 걸리는 거리다. 그런데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입장 5분전… 매표소에서는 날씨기 좋지 않으니 오르지 않는게 더 낫다고 조언했으나 젊음이 밑천인 우리는 2시간이라는 목표로 오르기 시작했다. 우리 두명은 거의 쉬지 않고 뛰어올라갔다. 거의 1시간을 오르다 보니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1시간 후에 우린 정상까지 오를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떻게 올라갈 수 있었나?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때는 “한번 해보자”라는 젊음의 자존심을 무기로 한번 미친짓을 해 본것이었다. 그러나 그때의 일은 내가 가진 체력의 바닥을 경험해 봤을 뿐만 아니라 2시간만에 오른다라는 생각외에는 불가능하다는 것조차 잊어버린,,, 그리고 남들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첫 기억이었다. 이후에도 나는 내가 어려울 때 남이 해보지 못한 무엇인가를 해냈다는 자신감으로 해보자하면서 몰입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몰입은 자신을 잊어버리면서 이뤄가는 과정이다. 잊는다(忘)는 것은 돌아보지 않는다는 의미다. 따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인가 이해관계를 따지고 할지 안할지를 결정하는게 아니라 무조건 좋아서, 무조건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하지 않을 수 없어서 한다는 말이다. 순수한 열정에 미쳐야만 목표를 달성할 수 있고 원하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김명민씨를 좋아한다. 그의 배우로서 연기력은 명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불멸의 이순신’이 끝나고 초등학교 아이들은 그를 이순신 장군으로 기억했다. ‘하얀거탑’에서는 사람들은 장준혁이라는 인물과 동일시 됐다. 어떤 사람은 김명민씨 없는 하얀거탑은 상상할 수 없다고 얘기할 정도였다. 이후 ‘베토벤 바이러스’에서는 그를 또 다른 인격체인 강마에로 기억하게 만들었다. 왜 이렇게 시청자들이 그의 연기력에 빠질 수 밖에 없을까? 그 이유는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그 자신이 극중 인물에 완전히 몰입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극중인물을 연구하고 그와 관련된 직업과 자료를 찾아 전문성을 확보하고, 외면에 비쳐지는 이미지를 연구하면서 자신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를 모색한다. 이렇게 늘 주어진 역할에 몰입하고 자신의 모습을 바꾸는 노력이 결국 극중 인물과 동일시되어지고, 그런 그의 연기에 찬사를 보내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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