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축구,야구,격투기)등~

[스크랩] 55,397

게디 2007. 4. 11. 22:39
꽉 들어찬 서울 월드컵경기장

축구와 인연을 함께하면서부터 날씨에 민감해졌다. 굳이 내가 날씨에 민감해야 할 필요는 없었지만, 그라운드에서 영향을 받을 선수들을 떠올리면 같이 예민해지곤 한다.

바람 많이 부는 날은 제공권이 좋은 팀에게 유리한 날이고, 비가 오는 날엔 좋은 드리블러를 보유한 팀이 골치 아픈 날이다. 너무 더운 날이면 노장들이 많은 팀의 체력 저하가 우려되고, 너무 추운 날이면 부상에서 갓 회복한 선수들의 재발이 우려되곤 한다. 그렇게 날씨에 축구라는 내 직업을 더하고 있었다.

‘축구 하기 딱 좋은 날.’ 지난 8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을 찾기 위해 집을 나서며 들었던 생각이다. 너무 덥지도 그렇다고 너무 화창하지도 않은 날. 적당한 바람과 적당한 햇살로 선수들의 플레이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날. 그런 날이 축구 하기 딱 좋은 날이다. 서울과 수원의 K 리그 5라운드 경기가 열렸던 지난 8일은 ‘축구 하기 딱 좋은’ 그런 날이었다.

그렇게 축구 하기 딱 좋은 날이 되면 또 하나의 기대감이 차오른다. 바로 ‘많은 축구팬이 경기장을 찾겠구나.’라는 설렘이다. 아직 완전하게 자리 잡지 못한 우리네 K 리그에서 가장 소원하고 절실한 것은 팬들의 관심과 사랑이다. 그리고 그런 팬들의 사랑을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경기장을 찾는 그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경기 시작 두 시간 전, 표를 사고 있는 사람들.

8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서울과 수원의 라이벌전. 지난 컵 대회에서 수원을 4-1로 대파한 서울은 확실한 우위로 수원의 기를 꺾어야 했다. 반대로 수원은 화려한 복수에 성공해야 했다. 또 두 팀은 많은 스타 플레이어들을 보유하고 있는 인기 구단이다. 동시에 이번 시즌 강력한 우승 후보들이다. 팬들의 관심이 모일 수밖에 없는 조건은 충족된 셈이었다.

며칠 전부터 많은 언론은 앞다투어 두 팀의 리턴 매치를 조명했고, 축구 팬들은 커다란 기대와 관심으로 8일을 기다렸다. 지난 3월 21일 열렸던 주중 컵 대회보다 더 많은 관중이 경기장을 찾을 거라는 기대가 나오기 시작했다. 5만을 돌파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도 나왔다. 5만 돌파면 프로 축구 한 경기 최다 관중이다. 새로운 역사의 시작인 셈이다.

정말 그 역사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사실 서울과 수원의 이 경기 내용과 결과만큼이나 이날 들어올 관중의 수도 궁금했다. 서울의 구단 관계자가 이날 아침까지 인터넷 예매 3만 장이 모두 나갔다고 했다. 현장 판매만 남은 셈이었다. 과연 몇 명이나 들어올까? 기대감과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들었다.

궁금해진 엉덩이를 계속 의자에 붙이고 있긴 힘들었다. 오후 2시. 경기 시작 한 시간 전에 경기장 밖의 상황이 살펴보러 자리를 떴다. 서울 구단 관계자도 아닌 내가 굳이 궁금해야 할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치더라도 궁금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표를 구하려는 엄청난 인파로 통로가 막혔다.

경기장 밖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삼삼오오 짝을 이뤄 저마다의 좌석을 찾아 움직이고 있었다. 서쪽 매표소에는 꽤 긴 줄을 서며 표를 구하려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낯선 광경이었다. K 리그 경기를 보기 위해 현장에서 줄을 서서 기다린다는 것. 물론 그런 경우들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유로운 일요일 그런 수고를 감수하며 경기장을 찾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서쪽 매표소를 지나 남쪽을 거쳐 동쪽으로 향하던 중 깜짝 놀랄만한 일이 벌어졌다. 엄청난 인파가 표를 사기 위해 경기장 통로를 완전히 막아버린 것이다. 지금까지 K 리그 경기장에서 볼 수 없었던 광경이었다. 그런 모습은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매표소에서도 일어났고, ‘얼마나 입장할까?’라는 우려는 ‘경기 시작 전에 다 들어올 수 있을까?’라는 걱정으로 바뀌었다. 물론 정말 유쾌한 걱정이었다.

경기 30분 전, 이미 본부석과 그 맞은편 그리고 양 팀의 서포터석은 다 찼다. 관중은 계속 입장하고 있었고, 지금까지 2층도 제대로 차지 않았던 서울 월드컵경기장은 3층도 관중으로 차오르고 있었다. ‘55,397’ K 리그 한 경기 최다 관중 신기록이 작성되었다. FC 서울이 상암에 둥지를 튼 이후 W석 3층 개방은 이번이 처음이었단다.
경기 시작 30분 전, 빈자리가 조금 보이지만 엄청난 관중이다.

55,397. 국내 스포츠에서 찾아보기 힘든 숫자다. 야구든 축구든 혹은 대표팀 경기든, 한 경기에 5만이 넘는 관중을 유치하는 것은 분명 이례적인 일이다. 지난해 가나와의 친선 경기에서는 3만 6천 명의 관중이, 시리아 전에서는 2만 4천 명의 관중이 경기장을 찾았을 뿐이다. 올 해 열린 우루과이와의 친선 경기에서도 4만 2천 명이 서울 월드컵경기장을 찾았었다.

물론 이 신기록에 빠져 마냥 기뻐하기만은 이르다. 전날 울산과 성남의 또 다른 빅 경기에는 만 명도 되지 않는 관중이 입장했을 뿐이고, 토요일 열린 6경기의 모든 관중 수는 서울과 수원의 5만 5천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

서울과 수원이라는 두 팀의 대결에만 관중의 발걸음과 축구팬의 시선이 모인다는 것도 반길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 두 팀의 대결에도 축구 팬이 없는 것보다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한 경기 최다 관중이라는 또 하나의 기록을 세우며 넘어서야 할 목표가 상향 조정되었다는 점도 그렇다.

앞으로 세워진 이 기록을 다시 깨기 위해 구단과 언론 그리고 축구팬이 다 함께 다시 노력하는 일이 남았다. 선수와 구단은 더 재미있는 경기를 위한 노력을, 언론은 팬들의 관심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사로 K 리그를 알려야 한다. 그러면 팬들은 그런 노력에 한 번 더 경기장을 찾고 힘껏 박수를 쳐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더 재미있는 경기와 리그를 만드는 일이다. 그렇게 된다면, 다음은 ‘매진 사례’라는 상상하지도 못한 얘기를 들을 수 있지도 않을까? 그곳이 서울이든 수원이든 아니면 서귀포든 말이다.

[플라마ㅣ손병하] bluekorea@eflamma.com

가장 깊고 맑은 축구이야기, 대한민국 축구의 불꽃 - 축구공화국 | 플라마
- 저작권자 ⓒ 플라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www.eflamma.com
출처 : 스포츠
글쓴이 : bluekorea 원글보기
메모 :